[평신도 신학강좌] 성경은 무엇인가

입력 2010-08-18 17:31


(7) 고대 번역본

세계 문명이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나일과 같이 큰 강을 낀 비옥한 평야지대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면, 신앙의 역사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건조한 산악지대 가나안 땅에서 시작되었다. 이 땅에 “젖과 꿀이 흐른다”는 것은 기름진 땅이라는 뜻이 아니라 농사보다는 목축과 양봉을 하기에 적합한 메마른 땅임을 의미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좁고 척박한 땅을 ‘계시의 터전’으로 삼으셔서 선지자와 종들을 통해 자신의 말씀을 기록케 하고 널리 전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문자로 기록되어 인류 역사에 그 첫 모습을 드러냈던 책은 모세오경이었다. 모세가 기록한 다섯 권의 책(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는 우주만물을 비롯한 인간의 창조, 이스라엘 민족과 주변 국가들의 시작, 출애굽과 율법 수여, 광야생활,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 준비과정 등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었다(기록 연대는 주전 1446∼1406년께). 이후 하나님의 말씀은 말라기까지 1000여년에 걸쳐 계속 기록되었으며 마침내 오늘날의 39권 구약성경으로 완성되었다.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유대인들은 끊임없이 신앙의 박해와 생존의 위협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들은 신앙의 자유와 안정된 삶을 찾아 주변 국가들로 이주해 갔지만 그곳에서 더욱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그것은 곧 그들의 자녀들이 모국어를 잊어버려 성경을 읽을 수 없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선민의식과 정체성이 크게 약화되어 버린 것이었다. 이 심각한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땅의 언어로 구약성경을 번역하는 일에 착수하였다.

고대 구약 번역본들 가운데서 맨 처음 나온 중요한 번역본은 70인역(Septuagint)이다. 그동안 이 번역본은 애굽왕 프톨레미 2세의 명령으로 이스라엘 12지파에서 6명씩 72명이 선발되어 72일 동안 바로 섬에서 번역된 것으로 알려져 왔었다. 그러나 이것은 한낱 근거 없는 가설에 지나지 않으며, 아마도 알렉산드리아에 사는 유대인들이 주전 250년께에 헬라어를 쓰는 동족을 위해 번역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무엇보다도 이 70인역은 헬라어 문화권에 사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표준 구약성경으로 사용되었다. 사도 시대 이후 기독교 출발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한편 신약성경의 기자들과 교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바벨론 포로 이후 히브리어 대신 아람어를 주로 쓰는 유대인들을 위해서는 탈굼(Targum)역(주후 1∼7세기)이, 그리고 수리아어인 경우에는 페쉬타(Peshitta)역(주후 200년)이 각각 출간되었다.

헬레니즘이 점차 쇠퇴해져갈 무렵 유럽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로마는 자신들의 라틴문화를 보급하는 일에 온 힘과 노력을 기울였다.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제롬(Jerome)은 먼저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다음(주후 390∼450년) 계속해서 헬라어 신약성경을 알렉산드리아 사본에 가깝게 번역하였다. 그의 벌게이트(Vulgate)역은 서방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번역본으로 인정되었고, 트렌트(Trent) 회의에서 공인된 이후 지금까지 가톨릭교회의 공식 성경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만일 성경이 한글로 번역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어려운 원문 성경을 읽어야만 했을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인가!

고영민 총장<백석문화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