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약국(66)
입력 2010-08-18 10:54
이끼 그리고 아저씨
내가 잘 아는 어느 서울 교회의 수양관에서 ‘이끼’라는 영화의 일부를 찍었다고 한다. 어느 블로그에 보니 다음과 같은 소감이 실려 있다.
“18세 이상 관람가능. 가끔 잔혹한 장면 나옴! 선과 악의 극명한 대립. 인간의 본성과 욕심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 난 뭐가 옳은지 해답은 못 찾음! 인터넷에서 만화로 본 윤태호의 이끼를 너무나 성공적으로 영화화하여 내가 놀란 영화. 박해일 정재영 유선의 탄탄한 연기력과 특히 김혜수의 남친 유해진의 연기력이 대단한 작품. 사실은 왜 제목이 이끼인지랑 줄거리랑, 마구 마구 얘기하고 싶은데. 혹시라도 보실 분이 있으면 김빠질까봐 목구멍까지 나오는 걸 참고 있음. 휴가철 시간이 되실 때 ‘이끼’ 보세요. 2시간 45분인가? 무지 오래함. 난 하나도 안 지루했는데?”
영화 ‘아저씨’도 ‘이끼’와 함께 ‘나쁜 남자’ 류의 영화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어느 때부턴가 우리사회에는 나쁜 남자가 유행처럼 선호되고 있다. 어느 때는 다정하고 다감하여 한껏 부드러운 남자가 값이 나가더니, 기름종개처럼 이쁘장한 아이들, 배 근육이 멋진 남자, 허벅지 굵은 남자로 흐르다가 이제는 나쁜 남자란다.
이런 대중문화 콘텐츠는 인간의 은밀하고 사악한 것에 대한 호기심을 노골화할 뿐만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는 악인을 예찬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그동안 억눌려 왔던 사악한 본성이 울타리 밖으로 나오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사실 그동안 인간의 사악함에 대한 탐구가 부족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이렇게 인간의 사악함에 대한 사전 지식이 모자라기 때문에 영화에 등장하는 악역이 심지어는 참신하다고 믿거나, 구원자와 동일시하는 호소력을 지닐 수도 있는 것이다.
봇물을 이루고 있는 나쁜 남자의 사회 기류 속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고 읽어 내야 하는 것은 이것이다. ‘착한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사회적인 통념의 고착 말이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9)
<춘천성암감리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