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서거 1주기] “시장 물가 꼭 묻고 라면도 정말 좋아하셨는데…”
입력 2010-08-17 18:39
“불가능한 얘기지만 대통령께 마지막 밥상을 차려드릴 기회가 온다면 라면을 끓여드릴 겁니다. 라면을 정말 좋아하셨는데 건강 때문에 많이 못 해드렸거든요. 라면과 함께 민어매운탕과 홍어회, 얼큰하게 끓인 장어된장국도 해드리고 싶어요.”
문문술(57) 서정대학 호텔조리과 교수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하루 앞둔 17일 “김 전 대통령은 내게 부모와 마찬가지였다”며 이같이 말했다. 경기도 양주 서정대 교수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얽히고설킨 김 전 대통령과의 갖가지 추억담을 소개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중간 중간 웃음을 짓기도 했지만 먹먹해진 가슴 탓에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문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밥상’을 책임졌던 인물이다. 롯데호텔 조리팀에서 일하던 그는 1980년대 중반 김 전 대통령이 이 호텔에서 열린 조찬기도회에 참석했을 때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1년에 3∼4번씩 김 전 대통령이 호텔을 찾을 때면 직접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그의 고향인 전남 신안에서는 선생님으로 통하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다음달인 98년 3월 청와대로 들어갔다. 대통령이 먹을 일주일치 식단을 짜 매주 토요일 이희호 여사에게 보고하고, 직접 시장을 봐 요리를 만드는 생활이 시작됐다.
“야식으로 갑자기 호떡이 먹고 싶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 호떡 반죽이 오래 걸리잖아요. 그런데 대통령은 ‘시간이 왜 이리 오래 걸리느냐’고 야단을 치셨어요. 제 딴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참 섭섭하더라고요. 다른 식사를 준비할 때도 음식에 워낙 일가견이 있는 분이라 세심하게 신경 써야 했습니다. 재료의 신선도 같은 것은 대번에 알아차리셨거든요.”
김 전 대통령은 이런 문 교수를 “문군”이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대했다. 문 교수의 아들이 대학에 합격했던 2000년엔 학비에 보태라며 격려금도 줬다. 문 교수에게 시장물가가 어떤지, 서민들은 어렵게 살지 않는지 등을 묻기도 했다.
문 교수는 1년 전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김 전 대통령 부속실에서 보내온 문자메시지를 통해 알았다.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는 “워낙 체력이 강하셨던 분이라 그렇게 쉽게 돌아가실지 몰랐기에 실감은 안 났다”며 “하지만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눈물이 핑 돌면서 너무 착잡했다”고 회고했다.
지난해 3월부터 강단에 선 그는 학생들에게 한식을 가르칠 때마다 양식을 싫어하고 한식을 좋아했던 김 전 대통령 생각이 많이 난다고 했다. 그는 서거 1주기인 18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김 전 대통령 묘역에서 있을 추도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서울 동교동 주민들 역시 김 전 대통령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고인이 겪은 영욕의 세월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만큼 이들이 느끼는 그리움과 회한은 남달라 보였다. 세탁소 ‘단해사’ 주인 박병선(67)씨와 부인 임경남(55)씨가 대표적이다. 부부는 77년 세탁소 문을 연 뒤 30년 가까이 김 전 대통령의 세탁물을 도맡았다.
“서거하기 두 달 전 세탁물을 가지러 갔는데 김 전 대통령이 손을 잡고 ‘고생이 많으시다.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악수를 해주셨어요. 일반인도 세탁소에서 왔다고 하면 무례하게 대할 때가 있는데 그분은 그렇게 높은 자리에 계셨음에도 저희를 존중해준 분이셨죠.”
임씨는 김 전 대통령 국장 기간에 이희호 여사가 입었던 검은색 원피스와 얽힌 얘기를 전했다. 20년도 더 된 낡은 원피스였는데 유행에 따라 옷깃 길이를 줄였다 늘이기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것이다. 임씨는 “이 여사가 장례식에 입고 갈 옷이라고 옷깃을 줄여달라고 요청을 하셨다”며 “그렇게 검소한 분들을 본 적이 없다. 평소에도 김 전 대통령 부부는 남대문에서 사 온 옷이나 개량 한복을 주로 입으셨다”고 말했다.
부부는 대통령이 생전에 부부를 볼 때마다 “힘드시지 않느냐” “수고가 많으시다”고 했던 말들을 가슴에 새기며 살아간다고 했다. 박씨는 “그동안 대통령을 뵐 때마다 가슴이 떨렸다. 지금도 대통령을 생각할 때마다 울컥한다”며 슬퍼했다.
80년대 가택연금 시절 요구르트 배달을 하러 김 전 대통령 집에 드나들었다는 김모(55·여)씨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집에 드나들면 무시할 수도 있는데 김 전 대통령은 매번 날보고 목례를 하셨다”며 “돌아가신 지 1년이 지났다고 하니 그때 생각이 많이 난다”고 전했다. 수도 설비를 점검하거나 보일러를 수리하기 위해 김 전 대통령을 몇 차례 마주한 적이 있다는 유모(70)씨 역시 “일을 하러 집에 가면 ‘자네 왔는가’라며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점잖으신 분이셨다”고 회고했다.
최경환 김대중 평화센터 공보실장은 “집안에서도 어른이 계실 때는 잘 모르지만 돌아가시면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듯 우리 사회 역시 그런 것 같다”며 “김 전 대통령이 살아계셨다면 남북관계 등의 방향을 제시하셨을 텐데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