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제재법 시행세칙’ 앞당겨 발표… 美, 한국 동참 고강도 압박
입력 2010-08-18 00:31
미국 정부의 ‘포괄적 이란 제재법 시행세칙’이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 발표되면서 정부가 선택의 기로에 섰다. 당초 관보게재 시점으로 알려졌던 10월 초까지 시간을 끌면서 대응책을 마련하려고 했던 정부로서는 입장을 정리해야 하는 시점에 다다른 셈이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17일 “관행상 90일 내로 하도록 돼 있는데 이번 이란 제재에 대한 시행세칙은 그 절반 시점에 발표가 이뤄졌다”면서 “이는 미 행정부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며, (국제사회를 향해) 상당한 프레스(압박)를 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고 설명했다. 다른 외교부 당국자도 “미국 정부가 그동안 많은 준비를 해 온 듯하다”면서 “미국의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보에 게재된 50쪽 분량의 내용 중 18쪽이 매우 전문적이어서 기획재정부와 협의 하에 정밀 분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측 요구의 핵심은 이란의 동아시아 금융창구 역할을 하는 멜라트 은행 서울지점의 폐쇄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1929호 결의에 더해 미국의 포괄적 이란 제재법에 보조를 맞춘 우리 정부 독자의 제재안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는 16일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위상,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위상에 맞는 행동을 해주기 바란다”고 압박했다. 반대로 이란은 한국이 독자적 제재를 가할 경우 보복하겠다고 공언해왔다.
미국 정부가 이른 시점에 시행세칙을 내놓은 것은 로버트 아인혼 대북한·이란 제재조정관의 방중 일정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아인혼 조정관은 7∼8월 초 유럽-한국-일본 등을 돌며 제재 분위기를 조성한 데 이어 다음달 초에는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중국과 담판 전에 제도적 정비를 마무리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아울러 ‘모호성’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한국 등 국제사회에 대해 동참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이란 독자제재는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달 13일 재정부를 축으로 6개 부처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대응책을 논의해 왔다. 하지만 5일 첫 공식회의 뒤 멜라트 은행 서울지점에 대한 공식입장은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 6∼7월 멜라트 은행의 불법행위에 대한 조사를 벌였던 금융감독원은 결론을 내리고도 발표를 미루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장 조사는 6월, 자료조사 및 내부 검토는 7월 마무리됐으며, 현재는 발표만 남겨 놨다”고 밝혔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