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으로 뛰는 시민출연자 방송왜곡 우려
입력 2010-08-17 21:37
“6개월 만에 컴백했는데 촬영 건 주셔서 감사합니다. 7월 6일에 방송된다니 많은 시청 부탁드려요∼.”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게 된 배우의 말이 아니다. 방송의 생활정보 프로그램에 섭외돼 촬영을 마친 일반인이 인터넷 카페에 올린 글이다.
MBC ‘생방송 오늘아침’, KBS ‘뉴스타임’, SBS ‘생방송 투데이’ 등 생활정보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거나 방송 아이템을 체험해 보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시민 출연자’들이 늘고 있다. 각종 인터넷 카페에는 이들이 출연할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수수료를 받는 에이전시들이 여럿 활동하고 있다. K에이전시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는 17일 현재 1만3975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자녀를 아역 배우로 만들려는 주부나 모델 일에 관심이 많은 여성이 다수를 차지한다. 생활정보 프로그램은 요리, 미용, 건강, 육아 등 생활밀착형 내용이 많기 때문에 주부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출연한다.
이 카페 회원인 김모(31·여)씨는 방송 출연만 10회가 넘을 정도로 경력이 화려하다. 잡지 모델도 한 적이 있는 김씨는 SBS ‘산부인과’, KBS ‘수상한 삼형제’ 등 드라마뿐 아니라 MBC ‘경제매거진M’, KBS ‘생방송 오늘’ 등 방송사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출연했다. 주부 송모(40)씨도 MBC ‘경제매거진’, KBS ‘무한지대큐’, KBS ‘한식탐험대’ ‘생방송 오늘’ 등에 얼굴을 내밀었다.
‘시민 출연자’들이 느는 이유는 출연료 등 수입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에 따라 최대 20만원가량의 상품권을 받을 수 있다. 출연료가 없더라도 식당이나 헤어숍, 건강검진을 무료로 체험할 수 있다. TV에 출연한다는 자체도 매력이다.
문제는 방송 출연을 업으로 삼다시피 하는 시민 출연자들로 인해 방송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이다. 출연자들은 출연 기회를 잡기 위해 자신의 처지나 상황을 과장하고 심지어는 조작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부 백모(34)씨는 자녀가 피자와 햄버거를 많이 먹어 비만이 됐다는 거짓 제보를 해 지난 7월 패스트푸드와 비만의 상관관계를 다룬 MBC의 한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채식을 한다고 밝히고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는 자녀들에게 패스트푸드를 먹인다고 밝힌 출연자도 있다.
방송 프로그램 제작진이 시민 출연자를 이용해 방송을 왜곡시키는 일도 있다. 한 지상파 방송사는 최근 맛집 소개 프로그램을 내보내면서 인터넷 카페를 통해 미리 모집한 사람들을 음식점 손님으로 출연시켰다.
시민 출연자들이 늘고 있지만 이들을 방송사와 연결해 주는 에이전시들은 무허가로 운영되는 곳이 대부분이다. 직업소개업으로 정식 등록하지 않고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영업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에이전시들은 수수료를 받고 일자리를 알선하는 만큼 직업소개업에 해당된다”며 “관할 구청에 등록하지 않고 영업을 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밝혔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