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복지 선진국’ 문패 떼나… 실업급여 지급 기간 축소

입력 2010-08-17 21:34


복지국가의 대명사 덴마크마저 경제 위기로 사회안전망을 축소하기 시작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덴마크는 지난 6월부터 실직자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기간을 4년에서 2년으로 줄이고, 재취업을 위한 의무를 강화했다. 클라우스 외르트 프레데릭센 재무장관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4년간의 실업급여라는 호사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58세의 간호사 잉어 스코우비씨는 건강이 나빠지면서 지난 4년 동안 취업과 퇴사를 되풀이해왔다. 실업급여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었고, 치료비는 모두 정부가 대줬다.

하지만 최근 직장을 관둔 스코우비씨는 실직 생활이 전보다 힘들어졌음을 실감한다. 매주 구직센터에서 알선해주는 직장에 찾아가 면접을 봐야하고, 직업상담사와의 면담에도 빠져선 안 된다. 재취업 교육 직장 수준은 낮아져 지금은 학교 급사 채용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그녀는 “예전엔 이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내가 마구 조종당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배관공으로 일하다 실직한 지 3개월 된 토르벤 프레데릭센(32)씨는 “구직 상담 시간과 어머니의 장례식이 겹쳤는데, 구직센터에선 무조건 상담을 받으러 오라고 요구했다”며 불평했다.

덴마크 기업은 언제든지 직원을 해고할 수 있는 대신, 해고된 직원은 급여의 80%까지를 실업급여로 받을 수 있다. 넉넉한 실업급여 때문에 직장을 관두거나 잘리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매년 직장을 옮기는 노동자 비율이 30%에 이른다. 금융 위기 이전까지 덴마크의 실업률은 평균 1.7%로 완전고용 수준이었다. 이런 덴마크 시스템은 고용의 유연성(flexibility)과 완전 고용(job security)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플렉시큐리티(flexicurity)’라고 불렸다.

금융 위기가 이런 상황을 바꾸었다. 실업률이 치솟으면서 올 상반기에는 4.2%를 기록했다. 실업급여 지급액도 그만큼 늘어났다. 높은 복지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봉급의 절반을 기꺼이 납세해온 덴마크인들도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실직자를 위한 정부의 재정 압박이 커지면서 플렉시큐리티도 흔들리고 있다. 덴마크 최대 노동조합인 HK의 킴 지몬센 위원장은 “플렉시큐리티 모델은 이제 유연성만 보장할 뿐 고용 안정성은 사라졌다”며 “고용주들에게 해고하기 전 2∼3개월의 유예기간을 두는 방안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덴마크 기업들은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부 유럽 국가들처럼 강성 노조가 등장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프레데릭센 장관은 “덴마크는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며 앞으로 사회안전망을 더욱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