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과 입체, 다섯 겹 유리에서 만나다… ‘입체회화’ 작가 손봉채 개인전
입력 2010-08-17 19:04
멀리 떨어져서 얼핏 보면 평면회화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면 입체회화다. 화면도 캔버스가 아니라 폴리카보네이트라고 불리는 일종의 방탄유리다. 그것도 한 겹이 아니라 다섯 겹을 칸칸이 세워 입체감이 두드러지게 했다. 작품과 연결된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켜지면 형형색색의 빛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2차원 회화와 3차원 입체의 결합을 시도하는 작가 손봉채(43)의 작품이다.
조선대 조소과를 나와 ‘빛을 담은 입체회화’에 몰두하는 작가는 1997년 광주비엔날레에서 거꾸로 페달이 돌아가는 자전거 207대를 전시장 천장에 매단 작품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자전거 설치작품이 뿜어낸 굉음은 마치 ‘권력에 옥죄어 사는 서민들의 신음’을 연상케 했다는 평가다. 그가 몇 년 전부터 제작하고 있는 입체회화는 지난해 중학교 미술책에 새로운 회화기법으로 수록되기도 했다.
광주광역시에서 활동 중인 그의 서울 개인전이 18일부터 9월 10일까지 용산 파크타워 비컨갤러리에서 열린다. ‘물소리 바람소리’라는 타이틀의 전시에는 미국 자유의 여신상과 북한의 모습이 오버랩된 ‘자유 공산주의’, 호수에 비치는 소나무 숲을 실루엣처럼 담아낸 ‘이주민’, 한아름 나무가 푸른 물빛에 반사되는 ‘시간의 간극’ 등 신작들이 전시된다. 그의 작품은 나무 등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역사적 상처가 배어있다.
“2003년에 아버지와 함께 전남 곡성의 한 계곡을 간 적이 있어요. 골짜기 풍경은 더없이 한적하고 아름다웠지만 아버지의 기억 속에 그 계곡은 빨간물로 남아 있었죠. 그곳은 경찰가족 120여명이 사살된 여순사건 장소였거든요.” 이후 작가는 역사적 상처를 가진 현장으로 눈을 돌렸다. 아름답고 고즈넉한 모습으로 비치는 풍경들에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희로애락이 담겨있는가 들려주고 싶었다.
0.2㎜ 두께의 방탄유리 화면은 유화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쉽지는 않다. 붓도 섬세하고 꼼꼼한 터치를 위해 1호 정도(여성의 아이라인 그리는 붓 크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작품의 제작기간이 오래 걸린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하루 평균 10시간씩 꼬박 2주 이상 걸린다. 그러나 작가는 “그림은 나에게 창이자 휴식이며, 작업의 순간에는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02-567-1652).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