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고 싶은’… 병실에서 만난 원수 죽느냐 죽이느냐

입력 2010-08-17 17:17


‘악마를 보았다’의 이병헌·최민식 못지않은 연기 대결을 펼치는 배우들이 또 있다. ‘죽이고 싶은’ 의 천호진·유해진이 그들. 사랑하는 여인의 복수극을 펼친다는 것도 ‘악마를 보았다’와의 공통점이다.



1984년 외딴 곳의 한 종합병원. 가족도 삶에 대한 의욕도 없이 기회만 닿으면 자살을 시도하는 남자 민호(천호진 분)의 병실에 어느 날 기억상실증에 걸린 전신마비 환자 상업(유해진)이 들어온다. 상업과 민호는 한 여자를 두고 다퉜던 철천지원수. 민호는 사랑하는 여인을 살해한 상업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고 기회를 노리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든 처지에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상업의 기억과 체력이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민호는 위기의식을 느낀다. 영화가 진행되며 민호와 상업은 서로의 기억이 어긋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악마를 보았다’와는 달리 ‘죽이고 싶은’은 인간에게 내재된 악(惡)의 본능이 아니라 어리석음에 집중한다. 철저히 위악적인 인간 상업과, 상업을 되도록 고통스럽게 죽이기 위해 가장 좋은 살인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민호가 맞는 결말은 어느 정도 예측의 범주 내에 있었던 ‘악마를 보았다’의 결말과 달리 완전히 관객의 허를 찌른다. 복수를 위해 교묘히 머리를 쓰고 행동에 옮길수록 그들은 복수에 다가서는 게 아니라 함정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두 밑바닥 인생의 흥미진진한 복수극을 지켜보다보면 기다리는 것은 치밀한 반전이다.

전반적으로 음침한 가운데서 군데군데 유머를 섞은 이 영화의 8할은, 두 주연 유해진과 천호진의 힘이다. 이들은 자기 편한 대로 믿고, 기억하고, 행동하는 인간성의 본질을 이성이 아니라 본능으로 이해하는 듯한 연기력을 보여준다. 유해진은 ‘이끼’에서, 천호진은 ‘악마를 보았다’에서 나름대로의 비중을 차지하고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으니 이번 영화의 연기와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듯. 특히 유해진은 ‘이끼’에서 능청맞은 충청도 사투리를 보여준 데 이어 이번엔 능수능란한 경상도 사투리로 관객을 놀라게 한다. 18세가. 26일 개봉.

양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