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보았다’로 5년 만에 복귀 최민식 “정서적 소모 너무 커 고기 먹는게 힘들었다”
입력 2010-08-17 17:17
배우 최민식이 ‘악마를 보았다’의 연쇄살인마 장경철 역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스크린쿼터 폐지 반대 운동 등에 휘말리면서 대중들로부터 모습을 감춘 지 5년 만이다. 저예산 예술영화 ‘히말리야, 바람이 머무는 곳’에 출연하긴 했지만 상업영화로는 2005년 ‘주먹이 운다’ 이후 처음이다.
오랜 공백 후 복귀, ‘악마를 보았다’의 잔혹성 논란, 신들린 듯한 연기 등으로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그를 16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지난 5년은 반성의 시간이기도 하고, 자부심의 시간이기도 했어요. 이성적으로도 그렇고 정서적으로도 그렇고. 5년이라는 시간이 해가 된다고 보지 않아요. 그동안 주워 담았던 감성과 지식, 대인관계 같은 것들…. 배터리를 충전했다고 볼 수 있지요. 이제부터 달릴 것입니다.”
달리기 위한 첫 작품으로 ‘악마를 보았다’를 선택한 셈이다. 영화는 개봉되자마자 논란에 휩싸였고, 영화에 대한 평가도 극단을 오가고 있다. 주연배우로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창작의 자유인 거 같아요. 만드는 사람들이 (관객을) 무시하고 ‘난 내 잘난 맛에 살아’ 하는 것도 문제지만, 문화상품에 대한 과잉된 우려나 작가에 대한 훈수 같은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거죠. 저는 하이퀄리티의 예술이 있으면 포르노도 존재해야 한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대중들은 거기에서 삼킬 것은 삼키고, 뱉을 것은 뱉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보거든요.”
그러나 결과적으로, ‘악마를 보았다’는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로부터 두 차례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고 세 번째 심의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1∼2분 가량의 영상을 삭제했다. 등장인물들이 인육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대사와 인육을 개에게 던져주는 장면 등이다. 최민식은 “그 때문에 펜션 장면이 다 망가졌다”고 말했다.
“그 장면은 인간이 사는 사회와는 별개인 공간에 이병헌이 연기한 수현이 침투해서 박살내는 장면인데 장면 삭제 때문에 풍요롭게 표현이 안 됐어요. 인육을 먹어? 저런 변태같은 놈들. 우리가 감각적으로 이렇게 생각할 순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왜 작가가 저렇게 표현했을까를 봐주셨다면 좋았을 텐데….”
‘악마를 보았다’는 국정원 요원 수현이 약혼녀를 죽인 연쇄살인범에게 복수극을 펼친다는 내용이다. 수현은 연쇄살인범 장경철을 붙잡아 죽이는 게 아니라 죽는 게 더 나을 것 같은 고통을 준 다음 다시 풀어준다. 영화는 시종일관 속도를 늦추지 않고 이들의 폭력과 잔혹성을 보여주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끝없는 폭력만이 나오는 이 영화, 최민식이 발견한 이 영화의 미덕은 무엇이었길래 5년 만의 긴 침묵을 깬 복귀작으로 선택했을까.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느껴졌어요. 때리고 자르는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엔 폭력이 엄청나게 많잖아요. 어디를 봐도 폭력이 존재하는 거 같아요. 우리에게 내재돼 있는 폭력성이 드러나는 과정이 (수현을 통해) 상징화돼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영화적으로 표현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추격자’와 같은 기존의 스릴러라면 하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최민식은 “당분간 피 칠하는 영화는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 촬영 후 한동안은 고기 먹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정서적인 소모가 많았다고 한다. “차기작에서는 약간 바보스럽게 나오는, ‘악마를 보았다’와는 전혀 다른 인물을 연기할 것 같다”고 귀띔했다. 잔혹성의 극한까지 가는 ‘악마를 보았다’, 비위만 좋다면 최민식·이병헌이라는 걸출한 배우의 절정에 달한 연기를 볼 수 있는 기회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