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아프리카… 생명수를 찾아라] (중) 생명과 사랑을 건네다

입력 2010-08-17 17:40


팀앤팀 케냐봉사 현장

숨죽였던 시추… 수량적어 포기하자 긴 안타까움


케냐 부부부 마을의 아침은 우물가에서 시작됐다. 태양이 고개를 내밀 무렵부터 마을 아래쪽 우물가는 물통을 든 여성과 맨발의 아이들로 붐볐다.



6살 여자 아이가 열심히 펌프 손잡이를 위 아래로 움직였고, 아기를 업은 여성이 펌프 주둥이에서 나오는 물을 조심스레 받았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듯한 남자 아이가 20ℓ짜리 물통을 들고 기우뚱기우뚱 우물로 왔다. 그 뒤편의 옥수수밭 사잇길로 아이를 뒤따르는 엄마가 보였다. 물통을 가득 채운 이들은 활기찬 목소리로 재잘대며 왔던 길을 돌아갔다.

이 평화롭고 사소한 풍경은 지난 1월 9일 부부부 마을에 첫 우물이 생긴 이후 가능케 된 것이다. 국제구호 NGO 팀앤팀이 어느 날 찾아와 우물을 파기 전, 부부부 마을은 그 앞을 흐르는 타나 강에서 물을 떠다 마셨다.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나쁜 수질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악어, 이곳에서 ‘맘바’라고 부르는 포악한 파충류의 공격을 항상 걱정해야 했다. 지난해에만 주민 3명이 물을 긷다 악어에게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텐트에서 잠을 잔 봉사팀 일행은 시판용 ‘전투식량’으로 아침을 먹은 뒤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쿰비 마을로 이동했다. 부부부 마을과 같은 포코모 부족 125가구, 600명 정도가 사는 부락이다. 팀앤팀 현장 작업팀은 이달 초부터 이 마을에서 우물파기 작업을 진행해 왔다.

버스가 도착하자 주민들이 우르르 몰려 왔다. 촌장이 나와 “외국인이 마을에 들어오긴 처음”이라고 했다. 만나교회 선교팀은 마을 중간의 커다란 나무 아래 자리잡고 준비한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낯선 아시아인들을 경계하던 주민들도 어느새 봉사팀에 다가와 웃음을 건넸다. 가족사진 촬영 봉사는 큰 인기를 끌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뒤 즉석에서 나눠줬는데, 주민들이 먼저 사진을 찍겠다며 몰려들었다. 근엄함 표정의 남성들이 사진 담당 손호석(29)씨의 권유에 못 이겨 멋쩍은 듯 아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웃어 보일 때면 주민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방한동 장로와 부인 서경식 권사는 아이들의 머리를 깎았다. ‘바리깡’으로 불리는 전기이발기가 징징 울려대며 남자 아이들의 용수철처럼 꼬인 머리를 잘라나갔다.

오후 2시쯤 봉사팀 전원이 마을 근처 우물파기 현장으로 향했다. 주민들도 기대감 속에 따라나섰다. 이날은 시추 작업이 잘 끝나면 지하수가 뿜어져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기존 우물은 2시간 정도를 걸어가야 있는데, 수량도 많지 않다고 했다. 팀앤팀 작업팀이 구슬땀을 흘리며 시추기를 돌리고 있었다. 땅에 박은 관정에서 흙물이 쏟아졌다. 이 물이 투명해진 뒤 펌프를 설치하면 공사는 끝난다. 귀한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는 가족들처럼 주민들이 주변에 둘러앉았다. 1시간 쯤 지났을 때 현장 팀장인 자독 오콰요 목사가 어두운 표정으로 실패했음을 알렸다. 30m정도를 파 들어가 지하수와 접선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수량이 너무 적어 실용성이 없다는 설명이었다. 정밀 조사를 거쳐 다시 우물을 파겠다는 약속도 함께 했다. 주민들은 말없이 일어나 마을로 발길을 돌렸다. 이글거리는 햇볕이 올 때보다 더 뜨거웠다.

그나마 위로가 됐을까. 옥수수 가루가 배달됐다. 만나교회는 이날 옥수수 가루 24㎏짜리 550포대를 구입해 220포대는 쿰비 마을에, 나머지는 부부부 등 주변 마을에 나눠줬다. 김병삼 만나교회 목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월드휴먼브리지는 지난달 우물파기 성금 5000만원을 팀앤팀에 기탁했고, 팀앤팀은 9월까지 쿰비 마을을 포함한 홀라 지역에서 5개의 우물을 팔 계획이다.

부부부 마을로 돌아왔는데 ‘큰 일’이 났다. 한국 친구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이웃 5개 마을에서 수백 명의 현지인들이 찾아와 환영의 축제를 연 것. 부부부 마을의 바란 싱고 족장은 “여러분들은 언제나 환영이다. 이 지역 어디를 가든 안전을 보장한다”고 말했다. 어린 아이들이 북과 함석판을 두드리며 흥을 돋웠는데, 춤과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봉사팀과 주민들이 하나가 돼 춤판을 벌였다. 신바람 난 아이들이 펄쩍펄쩍 뛰며 계속해 소리쳤다.

“투날리아에(우리는 외친다). 우와∼우와.”

아프리카를 와 본 사람은 밤하늘의 쏟아질 듯한 별빛에 감탄한다고 한다. 그 별빛보다 아이들의 눈빛이 더 반짝였다. 홀라(케냐)=

글·사진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