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서민’ 무색케 하는 교육정책… 1000억 ‘저소득 장학금’ 무산

입력 2010-08-16 21:32


정부가 올해 초 취업후학자금상환제(ICL)를 신설하면서 저소득층 이자부담 완화를 위해 도입키로 정치권과 합의했던 1000억원의 ‘저소득층 성적우수자 장학금’ 지급을 뒤늦게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청와대가 친서민 정책을 국정방향으로 잡고 있는 마당에 정부는 ‘가난하지만 공부 잘하는 대학생’의 학자금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권영진 의원은 16일 기획재정부에 저소득층 성적우수자 장학금 예산이 편성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추가경정예산에 반영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예산 편성이 어렵다”는 답변서를 보내왔다고 밝혔다. 국회에서도 추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어 장학금 지급은 사실상 불가능해진 셈이다.

‘저소득층 성적우수자 장학금’ 제도는 정부가 올해 신입생부터 기존의 정부보증학자금제 대신 ICL제를 적용하면서 도입이 논의됐다. 기존 정부보증학자금제도는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자 및 소득 7분위 이하 학생들에게 대출금 거치기간 중 대출이자의 전부 또는 일부를 차등 지원해 왔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09년에만 이자 지원액으로 약 1700억원을 사용했다. 하지만 ICL제도가 도입되면서 학자금대출 원금 및 이자 상환 시기가 취업 뒤로 늦춰진 대신 정부의 저소득층 학생에 대한 이자 지원은 모두 사라졌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정치권이 ICL 관련법 처리에 반대하자 재정부와 교과부 등이 직접 나서 ‘정부안대로 ICL제도를 시행하되 예산 1000억원을 추가로 마련해 2만명의 저소득층 성적우수자에게 연간 5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한다’는 절충안을 제시해 법안을 통과시켰다. ICL제도로 이자 지원이 끊긴 저소득층 학생에게 직접적인 장학금 지원을 약속한 셈이다.

그러나 법안통과 이후 재정부는 ‘합의 당시 추경 편성을 조건으로 장학금 지원에 동의했다’며 국회에서 추경에 재원을 반영하지 않으면 장학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말을 바꿨다. 반면 국회는 ‘장학금 지급에 추경 등 부대조건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국회 교과위 관계자는 “합의 당시 구체적인 장학금 지원 시점을 못 박지 않자 재정부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예산지급을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재정부가 추경을 편성하지 않아도 장학금 지급이 가능하다는 데 있다. 교과부는 지난해 말 ICL제도 법안처리 지연에 대비해 한국장학재단에 예산 1870억원을 미리 지원했다. 따라서 2010년 한국장학재단 출연예산 중 채권이자 지원 예산인 3015억원의 절반(1500억원)을 다른 용도(저소득층 성적우수자 장학금)로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결국 정부나 정치권의 의지만 있다면 저소득층 대학생에게 장학금이 지급될 수 있는데도 기관 간 미루기로 애꿎은 대학생과 학부모만 부담을 떠안고 있는 셈이다.

권 의원은 “정부가 말로는 친서민 정책을 강조하면서, 정작 서민들을 위한 예산배정에는 인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