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총리 후보자의 ‘격식 파괴’

입력 2010-08-16 17:39

13대 대통령 선거 때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서류가방을 직접 들고 다녀 화제가 됐었다. 집권당 대선 후보가 수행비서 몫인 가방을 챙겨들고 비행기 트랩을 오르는 모습은 유권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대통령 취임 후에도 가방을 들고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모습이 종종 TV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주창했던 그는 이렇게 격식을 파괴함으로써 국민 곁으로 다가서려는 노력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격식 파괴를 권위주의 청산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그는 청와대 젊은 비서관들과 맞담배를 하며 토론하기를 즐겼다. 군사정권 시절엔 상상조차 하기 힘든 모습이다. 5공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표는 친구 사이임에도 전두환 대통령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했다는 증언이 있다.

격식 파괴라면 이명박 대통령도 다른 대통령에 뒤지지 않는다. 국무회의장 내 대통령 의자를 맨 앞쪽에 두지 않고 한가운데 배치토록 함으로써 참석자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장관들에게 직접 커피나 차를 타 마시도록 했고, 자신도 그렇게 하고 있다. 장관이나 청와대 참모들에게 새벽이라도 보고할 게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전화할 것을 주문한다. 몸에 밴 실용주의의 표현이라 하겠다.

국무총리 중에서는 이홍구 전 총리가 격식을 싫어했다. 공사(公私) 불문하고 비서를 통하지 않고 직접 다이얼을 돌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수성 전 총리는 직원, 출입기자 가릴 것 없이 몇 번 안면을 텄다 하면 말을 놓기 일쑤였다.

김태호 총리 후보자가 격식 파괴 행보를 하고 있다. 그는 지난 12일 새벽 트위터에 “계란 프라이 다 탔다. 라면은 자신 있는데…”라는 글과 함께 냄비 바닥에 계란 프라이가 달라붙은 사진을 올렸다. 청문회 준비하느라 광화문 사무실에서 숙식을 하고 있는 김 후보자의 소박한 일상을 엿보게 한다. 요즘 그는 사무실 근처 대중식당에서 6000원짜리 점심을 먹으며 다른 손님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린다고 한다.

김 후보자의 소탈한 모습은 현 정권의 친 서민 정책과 맥이 닿아 있는 것 같아 일단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지나치면 안 된다. 정치적 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명색이 총리 후보자라면 최소한의 격식은 지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7년 전 티셔츠 차림으로 의원선서를 하겠다고 국회 본회의장에 나타난 유시민씨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그래서일까.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