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아프리카… 생명수를 찾아라] (상) 말라가는 케냐의 깊어지는 슬픔

입력 2010-08-16 15:17


팀앤팀 수자원 개발 사역 현장

뼈만 남은 팔로 웅덩이에서 흙탕물을 뜨는 아이의 버짐 핀 머리를 본 적이 있는가. 20ℓ 물통을 이고 벌겋게 달궈진 흙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여인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강에서 물을 긷다 악어에 손가락을 물렸다는 노인의 손을 본 적이 있는가. 아프리카에서 이것은 일상의 풍경이다. 마실 물이 없거나, 있어도 오염된 물을 마셔야 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지금’ 겪고 있는 나날이다. 그리고 여기, 목마른 아프리카를 물로 적시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전하려는 것은 단순한 식수가 아니라 생명이고 소망이고, 사랑이다.

국제구호개발단 팀앤팀(Team&Team). 그들의 케냐 수자원 개발 사역 현장을 찾았다. 경기도 성남시 만나교회 단기 선교팀과 국내외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자원봉사자 등 30명이 팀을 이뤄 동행했다. 3회에 걸쳐 아프리카의 생생한 현장을 보도한다.

지난 9일 오전 6시 케냐 나이로비의 팀앤팀 사무실에 일행이 집결했다. 기온은 섭씨 10도 안팎으로 싸늘했다. 나이로비에선 요즘이 연중 가장 추운 시기다.

무사한 여정을 위해 기도한 뒤 낡은 도요타 랜드 크루저와 외부에서 임대한 29인승 버스에 나눠 탔다. 마실 물과 옷가지 등을 싣고 나니 사람과 짐이 한 데 엉켰다.

목적지는 나이로비에서 동쪽으로 500㎞ 정도 떨어진 홀라 지역의 부부부 마을. 무슬림인 포코모 부족 150가구가 모여 사는 부락으로 케냐에서도 가장 물 사정이 나쁜 지역 중 하나다. 유일한 식수원인 타나 강은 오염이 심한 흙탕물이라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됐고, 물을 긷던 주민들이 악어에게 공격당하는 사례 역시 빈번했다고 한다. 그나마 지난 1월 팀앤팀이 마을에 첫 우물을 파 줘 그간의 고통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었다. 여기에 캠프를 차리고 주변 지역에서 우물 파기와 봉사활동을 벌인다는 게 이번 계획이었다.

번잡하고 매연 가득한 나이로비를 벗어나자 본격적인 아프리카 초원이 펼쳐졌다. 간혹 ‘마타투(케냐의 주요 교통수단인 미니버스)’가 무서운 속도로 지나쳐갈 뿐 오가는 차량도 눈에 띄게 줄었다. 일행은 중간 기착지인 가리사시(市)로 향하는 도로 중간에서 멈춰 섰다. 2008년 5월 수자원 개발 현장을 찾아가던 팀앤팀 차량이 전복돼 3명이 목숨을 잃은 지점이다. 현지인 수자원 팀장 헨리 라판도(32), 행정 일을 맡았던 송혜진(25·여)씨, 단기 봉사를 왔던 김지수(19)군 등 먼저 세상을 떠난 3명을 위해 일행이 기도했다. “우리의 발걸음을 멈출 수 없는 큰 이유가 바로 이들”이라고 김승환 팀앤팀 본부장이 말했다.

나이로비에서 멀어질수록 도로 사정이 나빠졌다. 흙길 위에 부침개처럼 얇게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 표면은 맹수에게 뜯긴 듯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 흉측스러웠다. 그 파인 곳에 걸리면 전복되거나 바퀴가 펑크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차량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곡예 하듯 비틀거리며 나가야 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케냐는 가히 재앙 수준으로 말라가고 있었다. 길가에 쓰러져 가는 교회 건물이 보였다.

소말리 부족들이 사는 미사리게사라는 부락에서 차를 멈췄다. 규모가 꽤 큰 워터팬(저수지)을 보유한 곳이라 상황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저수지 물은 완전히 말라 바닥이 쩍쩍 갈라져 있었다. 외지인들이 접근하자 마을 남자들이 몰려들었다. 일부는 일행을 향해 돌을 던지며 적개심을 드러냈다. 아프리카에서 물이 있는 곳은 항상 긴장 상태라는 말이 실감났다. 마을 촌장에게 방문 취지를 설명하고 허락을 얻은 뒤에야 저수지에 다가갈 수 있었다. 마을 마지막 저수지라는 그곳 역시 거의 바닥을 드러냈고, 남아 있는 물은 언뜻 봐도 진흙물이었다. 저수지의 물은 동물이 마시고, 웅덩이에 고인 물은 사람이 마신다고 했다.

일행은 다시 동쪽으로 향했다. 기온은 계속 올랐고, 바람은 더욱 건조해졌다. 몸 속 수분이 끝없이 땀으로 나왔기 때문에 계속해서 물을 마셔야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도로 옆으로는 어딘가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아기를 업은 여성들이 20ℓ짜리 물통을 머리에 이거나 줄에 묶어서 끌고 갔다. 물통 몇 개를 매단 나귀를 막대기로 때리며 몰고 가는 아이들도 보였다.

일행은 자정 무렵이 돼서야 부부부 마을에 들어섰다. 버스 타이어가 결국 험한 길을 못 이기고 펑크가 났고, 날이 저물면서 길을 잃기도 한 탓이다. 그런데 이 늦은 시각까지 모여서 기다리던 주민들이 일행을 뜨겁게 맞이했다. 아이들은 펄쩍펄쩍 뛰며 “잠보(안녕하세요)”를 외치고, 호각을 불어댔다. 바란 싱고(45)라는 이름의 족장이 나와 일행 한명 한명을 껴안았다. 그는 “우리의 친구, 팀앤팀이 우물을 파줘서 마을이 행복해졌다. 지금은 누구도 악어에게 물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진심이 전해졌다. 포코모 부족은 심한 가뭄이 들었던 몇 해 전 성탄절 무렵 인근 강가에 사는 오르마 부족과 우물 사용을 놓고 충돌해 최소 100여명이 사망하는 참사를 겪기도 했다.

팀앤팀 설립자 이용주 선교사는 “당장 물이 끊기면 하루 이틀 새 허약한 아이들부터 죽기 시작한다. 살기 위해선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들에게 물을 주는 것은 곧 평화를 전하는 일”이라고 했다.

Key Word-팀앤팀

분쟁과 재난 지역에 대한 총체적인 개발을 돕는 국제구호 NGO다. 물이 없어 고통받는 이들을 ‘아버지의 마음으로’ 돕기 위해 1999년 아프리카 케냐에서 이용주 선교사와 여러 동역들이 함께 첫발을 내딛었다. 현재 케냐를 비롯해 우간다 수단 소말리아 이집트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베트남 필리핀 등에서 일하고 있다. 지하수 개발, 고장 난 관정 복구와 펌프 수리, 소형 저수지 축조 및 수인성 질병 퇴치사업, 학교 건축 등에 힘쓰고 있다.

홀라(케냐)=글·사진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