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식물 이야기] ‘독립군 나무’라는 느티나무
입력 2010-08-16 17:44
‘독립군 나무’로 불리는 나무가 있다. 충북 영동군 군서면 박계리, 한가로운 농촌 주택가에 서 있는 키 20m의 나무다. 뿌리에서부터 두 그루의 나무가 붙어서 자란 것처럼 두 개의 줄기가 뻗어 나와서, 느티나무로서는 독특한 생김새를 가진 나무다. 주위에 단을 쌓고, 평상을 놓아 정자나무로 살아가는 나무다. 이제는 ‘독립군’의 긴박감을 느낄 수 없고, 그저 평안함이 배어나올 뿐이다.
독립군 나무라는 별명은 일제 침략기에 이 나무가 당당하게 수행해낸 역할에서 비롯됐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어려워했던 일 가운데 하나는 조직들 사이의 원활한 연락이었다. 특히 서울과 남부 지방을 연결하는 영동 지역은 중요한 통로였다. 당시 영동은 서울과 호남의 유일한 길목이었다.
일본인의 감시를 피해 이 지역을 통과하는 일은 무엇보다 전국 규모의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데에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걸 잘 아는 일본 순사들도 영동 지역의 순찰과 감시는 어느 지역에서보다 철저히 했다. 주민의 도움 없이 독립운동가들이 이 지역을 통과하는 건 불가능했다. 여러 방법을 모색하던 끝에 마을 사람들이 궁리해낸 묘책은 나무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일본인 감시자들의 움직임을 잘 살펴보고 그 결과를 나뭇가지에 암호로 표시하기로 했다. 허름한 헝겊을 느티나무 가지 끝에 걸어서 감시 상태를 알리는 방법이었다. 먼 곳에서도 눈에 잘 띌 만큼 높지거니 자란 나무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은밀하게 나뭇가지에 헝겊을 걸었고, 산에 숨어서 마을 사람들의 신호를 숨죽여 기다리던 독립운동가들은 나뭇가지에 걸려 나부끼는 헝겊을 보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특히 3·1운동 때에 이 나무는 서울에서 남부지방으로 독립선언문을 전달하는 데에 결정적인 공로를 세웠다. 일제가 물러간 뒤, 사람들은 이 나무를 ‘독립군 나무’ 혹은 ‘독립투사 느티나무’로 불렀다. 사람이 할 수 없었던 일을 멀리서도 눈에 띄는 크기로 자란 큰 나무이기 때문에 능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무 앞에 세워놓은 안내판에도 이 같은 내용은 새겨져 있지만, 세월의 풍상과 함께 안내판의 글씨는 희미해졌다. 당시 상황을 함께 겪었던 마을 사람들에게조차 이 나무의 내력이 희미해지는 듯해 아쉽다. 결코 잊힐 수 없는 광복절을 오래 기념해야 하듯, ‘독립군 나무’ 역시 오래 기억해야 할 나무다.
천리포수목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