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되면 다시 만들고…” 걸그룹 풍요 속 빈곤

입력 2010-08-16 21:08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걸그룹 열풍이 이어지면서 걸그룹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걸그룹의 생존주기가 점점 짧아지면서 일부는 등장했다가 금세 사라진다. 눈길을 끌기 위해 신변잡기적인 경력을 내세우며 노이즈마케팅(구설에 휘말리도록 함으로써 이목을 집중시키는 마케팅 전략)을 이용하기도 한다.

최근 두 달 사이 생겨난 걸그룹만 7개. 지난 6월에는 4인조 씨스타가, 7월에는 걸스데이와 미쓰에이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달에는 나인뮤지스, GP 베이직이 데뷔했고, 라니아와 초콜릿은 데뷔를 앞두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모델 경력이나 나이처럼 음악성과 무관한 특징들을 내세우며 관심을 끌고 있다. 9인조 나인뮤지스는 일명 ‘모델돌’이다. 멤버 이샘과 라나가 슈퍼모델 출신이고, 나머지 멤버들도 평균 172㎝의 늘씬한 키를 자랑한다. 이들은 음악 프로그램이 아닌 남성잡지 ‘맥심’의 표지모델로 나오면서 이름을 알렸다.

GP 베이직은 어린 나이로 논란을 일으키며 시선을 끌었다. 멤버 제이니가 초등학교 6학년이고, 나머지 다섯 멤버가 중학교 2학년이다. 초등학생이 선정성이 만연한 가사와 안무를 소화하자 비윤리적이라는 지적이 일었다.

한 인기 걸그룹을 기획한 제작사의 관계자는 “이미 지난해 열풍을 이끈 소녀시대 원더걸스 카라가 귀엽고 섹시한 소녀들의 이미지를 선점한 상태다. 여기에서 틈새를 찾으려다보니 특이한 이력에서 차별점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걸그룹이 쏟아지는 현상은 한국 음악 산업의 문제점을 반영한다는 지적이다. 전자음이 가미된 후크송(후렴구가 반복되는 노래)이 득세하는 상황에서 음악성이 가수의 흥행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기획사가 걸그룹을 찍어내듯 만들기에 유리한 상황인 것.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싱글 곡 하나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결국 노래만 유행에 맞으면, 멤버들이 얼마나 예쁘고 끼가 있느냐에 따라 인기가 결정된다”고 말했다.

대박을 기대하고 걸그룹을 만들고 보는, 기획사의 ‘안되면 말고’식의 태도도 문제다. 지난해 걸그룹의 열풍이 거셀 때도 플라잉걸스, 여성 듀엣 텐, 고고걸스 등 걸그룹이 속속 데뷔했지만 현재 살아남은 건 레인보우, 티아라, 시크릿 정도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걸그룹은 케이블채널이나 인터넷에서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어느 정도 인지도가 쌓이기 때문에 투자 대비 수익이 좋은 편이다. 잘 되면 카라나 티아라처럼 대박이 되기 때문에 만들고 본다”고 말했다.

손대현 한양대 교수(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장)는 “걸그룹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자신만의 색깔과 음악성이 없다면 단명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