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 통해 친서민 실현… “정치선진화 국회가 나서라” 주문

입력 2010-08-15 21:57

이명박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 방향을 밝혔다. 키워드는 ‘공정한 사회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 기조가 친서민 중도실용이었다면, 이를 포괄하는 보다 넓은 국정 이념으로 ‘공정한 사회’를 내건 셈이다.

◇‘공정한 사회’=후반기 국정이념에는 이 대통령의 최근 고민이 담겨 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대통령은 2008년 불어 닥친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자신감이 높다고 한다. 문제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지표는 좋은데, 국민들의 경제 체감도는 여전히 낮다는 점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기업이 좋아지면 중소기업도 좋아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고, 수출이 좋아지면 내수가 살아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며 “경제가 회복되면 일자리가 늘어날 줄 알았는데 이 역시 맞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 나온 개념이 ‘공정한 사회’다.

이 대통령은 ‘승자가 독식하지 않고, 노사가 협력·발전하며, 큰 기업과 작은 기업이 상생하는 사회’를 공정한 사회로 규정한 다음,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의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다만 ‘공정한 사회’를 위한 구체적 정책들을 새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이 대통령은 규제개혁, 교육개혁, 든든학자금, 미소금융,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 등 그동안 추진돼왔던 정책들을 거론했을 뿐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집권 후반기인 만큼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기보다 그동안 나온 정책을 발전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개헌=이 대통령은 처음으로 경축사에서 개헌 문제를 언급했다. 선거제도와 행정구역 개편 등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나온 발언이며, 구체적인 내용도 담겨 있지 않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청와대가 개헌을 제안해서 될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며 “정치권에 정치 선진화를 당부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재오 의원이 특임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정치권에서는 개헌에 대한 논의가 다시 살아나는 분위기이고, 여권 내부에서는 집권 후반기 최대 이슈가 개헌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이 대통령이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주기 바란다”며 정치권의 분발을 촉구한 점에 주목하는 시각도 많다.

개헌은 선거횟수의 조정, 권력구조 개편, 영토 및 경제 문제까지를 포괄하고 있는 이슈다. 특히 권력구조 개편은 한나라당내 친이계, 친박계,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모두 의견이 다르다. 때문에 이 대통령이 개헌 문제를 언급하기는 했으나,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지난해 이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안했던 선거구제 개편 문제는 국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조차 진행되지 않는 형편이다.

◇한·일 관계=지난 10일 발표된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 담화에 대한 화답 성격이 짙다. 이 대통령은 담화를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했지만, ‘넘어야 할 과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한·일 강제병합의 강제성·불법성 문제가 명쾌하기 해결되지 않았고, 강제동원 피해자와 위안부 등 식민지배 피해자에 대한 보상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이 대통령은 “한·일 양국은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새로운 100년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결 과거사 과제들을 해결하면서 새로운 한·일 관계를 만들어나가자는 메시지다. 조선왕실의궤 등 문화재 반환 협상 과정 등에서의 일본 태도가 미래지향적 양국 관계 논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경축사 안팎=이 대통령은 임태희 대통령실장, 홍상표 홍보수석 등 핵심참모들과 10차례 이상 독회를 가지면서 경축사를 가다듬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통일세 부분은 이 대통령이 직접 집어넣었다. 임 실장은 “내부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강했다”고 설명했다. 통일세 문제는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검토됐다가 ‘검토가 더 필요하다’는 논리에 따라 빠졌다는 후문이다. 이번 경축사의 핵심 키워드인 ‘공정한 사회’는 임 실장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실장은 이례적으로 직접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 경축사에 대한 해설 브리핑을 했다. 경축사 작성에는 소설가 이문열씨의 조언도 있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8월초 휴가지로 이씨를 초청해 경축사 내용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고 한다.

남도영 기자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