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희망·평화’의 기도 더위도 물리쳤다… ‘한국교회 8·15 대성회’ 50만 성도 집결
입력 2010-08-15 20:58
새벽까지 무섭게 이어지던 천둥번개와 폭우가 거짓말처럼 가셨다. 하늘은 청명하고 바람이 적어 뭉게구름이 그림처럼 피어있었다. 그 아래 서울시청 앞 광장 주위로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어느새 광장과 광화문 사거리부터 남대문 일대, 서울역 인근까지 가득 찼다. 역대 월드컵 응원전, 촛불 집회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인파였다. 어떤 요구나 주장이 있어서 나온 것이 아니다. 대단한 볼거리가 있어서도 아니다.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기독교인으로서, 내 교회 내 가정의 틀을 벗어나 한 목소리로 시대와 세계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였다.
15일 오후 3시30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특설 무대에서 ‘한국교회 8·15 대성회’가 열렸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이 처음 제안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주요 교단 및 연합기관들이 수 개월간 한 마음으로 진행해 온 결과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한국 기독교의 저력은 대단했다. 날씨가 좋다지만 야외 행사를 하기에 좋은 편은 아니었다. 섭씨 30도를 넘나드는 기온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그럼에도 역사적인 행사에 동참하려는 기독교인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서울 광장은 주요 순서자와 성회 관계자들만으로 꽉 찼다. 광화문을 넘어 남대문까지 교회 단위로 모여 앉은 사람들 곳곳에 설치된 전광판 중계를 통해 함께 찬양하고 기도했다. 성회는 서울 50만명을 비롯해 전국과 세계 곳곳에서 100만명이 참석한 가운데 동시에 열렸다.
다문화 가족들의 각 나라 전통을 대표하는 공연, 북한 민속 예술 공연, 타악 퍼포먼스 등 다양한 문화 행사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이번 행사의 중심은 말씀과 기도였다. 1980년대 이후 맥이 끊어진 대형 말씀·기도 집회를 부활시킨다는 것이 이번 행사의 주된 취지였기 때문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설교가이자 일제시대를 경험한 세대라는 이유로 주 설교자로 선정된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가 ‘8·15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우리는 8·15를 맞아 100만 성도가 모여 한국 기독교의 저력을 북한과 온 나라에 나타냈습니다. 교회는 오늘처럼 하나님 앞에서 항상 함께 기도하고 힘을 모아 나아가야 합니다.”
이밖에도 이동원(지구촌교회) 정성진(거룩한빛광성교회) 김학중(꿈의교회) 소강석(새에덴교회) 목사가 ‘감사와 사명’ ‘생명’ ‘희망’ ‘평화’에 대해 각각 메시지를 전했으며 다섯 차례의 합심기도 시간을 통해 참가자들은 한국교회와 대한민국, 통일과 세계평화, 지구 공동체 등을 위해 전심으로 기도했다.
권오성 NCCK 총무, 김운태 한기총 총무 등 교계 지도자들이 공동 낭독한 ‘한국교회 8·15 선언’은 한국교회의 회개와 반성을 담아냈다. 한국교회가 세계적인 성장을 이룩했지만 ‘역사적 사회적 책임이 부족하다’,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다’ 등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었다. “한국교회는 여러 번 분열하였고 예언자적 사명을 소홀히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기주의와 물량주의에 치우쳐 신자의 윤리적 책임과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음을 깊이 뉘우치며 회개합니다”라고 선언했다. 또 “창조질서를 회복하겠습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진실한 신앙인이 되겠습니다” “교파주의를 극복하겠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하겠습니다” 등 사회를 향한 다짐도 이어졌다. 또 선언문은 1910년 ‘한일병합조약’의 무효를 선언하고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을 촉구했으며 우리 정부와 주변 국가, UN 등에도 전쟁재발 방지와 핵, 북한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줄 것을 요청했다.
일본교회 대표를 초청해 식민지 시대 일제가 범한 폭력과 수탈에 대해 죄책 고백을 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순서를 성회 중심에 배치한 것도 한국교회가 역사적 책임 앞에 당당히 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기독교인 자원봉사자 양성을 위해 나설 ‘자원봉사자 섬김이’ 815명이 ‘섬김과 나눔 선언’을 한 순서는 사회적 책임 수행에 대한 의지를 대변했다.
성회를 마무리하며 김삼환 대표대회장(명성교회 목사)는 단상 위의 교계 지도자들을 모두 나와 무릎 꿇도록 한 뒤 결단의 기도 시간을 가졌다. 김 목사가 울먹이며 “주여, 이 나라를 다시 일으켜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자 참가자들도 큰 소리로 기도의 힘을 모았다. 이어 김영진 의회선교연합 대표회장(민주당 의원)과 황우여 국회조찬기도회장(한나라당 의원)이 번갈아 “대한민국 만세”와 “한국교회 만세”를 선창할 때 참가자들은 만세 삼창과 “할렐루야”로 화답했다. 기쁨의 외침이 도심 하늘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