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희망, 强小기업-(45) 부강샘스] 외롭고 힘들어도 ‘가지 않는 길’ 간다
입력 2010-08-15 19:17
‘레이캅.’
로봇 이름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아토피로 고생하는 자녀를 둔 주부에겐 그리 생소한 말이 아닐 게다. 알레르기의 원인이 되는 세균 등을 두드려 털어주는 살균 청소기이기 때문이다. 이 살균 청소기는 최근 한 홈쇼핑 방송에서 50분 만에 무려 5000대가 팔렸다. 1분에 100대가 팔린 셈이다. 지난해 말 방송에서는 50분 만에 4200대가량 팔렸다. 2007년 레이캅을 출시한 부강샘스(인천 남동공단)는 지난해 이 제품 하나로 국내외에서 1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15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회사 전체 매출액의 20%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레이캅이 이처럼 선풍적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일반적인 청소기와는 전혀 다른 특성 때문이다. 레이캅은 1분에 3600회에 달하는 완전펀치기능으로 침대, 매트리스, 이불, 카펫 등 패브릭류에 붙어있는 세균과 진드기, 미세먼지를 없애주는 살균형 청소기라고 회사 측은 설명한다.
부강샘스는 당초 청소기 생산업체가 아니었다. 1978년 설립된 이 회사는 각종 전자부품과 디지털 제품을 생산해왔다. 2000년대 초반엔 아이리버 등 국내 MP3 플레이어 업체의 제품 대부분을 주문자상표부착(OEM)으로 만들었다. 그러다 2004년 위기를 맞았다. 국내에 들어온 애플의 MP3 플레이어 ‘아이팟’이 인기를 끌면서 국산 제품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 하루가 다르게 주문량이 줄었다. 뽑아놓은 인력은 할 일이 없어 하늘만 쳐다봤다. 대규모 투자로 구축한 생산시설은 부채가 돼 돌아왔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성진(40) 대표는 2005년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자체 브랜드 개발에 들어갔다. OEM 방식으로는 더 이상 회사의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대표는 의대를 졸업한 의사 출신이다. 인턴과정을 밟고 유학까지 갔다가 부친 이하우 회장으로부터 사업을 물려받았다. 이 대표는 우선 대학 동기가 근무하는 대학병원을 찾았다. 소아과 진료실과 대기실엔 아토피 환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의사 친구는 “해마다 아토피 환자가 15∼20%씩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대표는 당시 알레르기 질환은 유발 원인을 없애야 하지만 사람의 피부각질을 먹고 사는 집먼지 진드기는 없앨 수 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오직 침구를 깨끗이 관리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순간 사업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바로 침구용 살균 청소기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당시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침구용 청소기는 없었다. 그는 옛날 어른들이 햇빛 좋은 날 이불을 밖에 널어놓고 방망이로 두들기며 털었던 행동을 과학적으로 재해석했다. 6시간 동안 침구류에 햇빛만 쏘였더니 진드기 수는 줄지 않았다. 일단 털어내는 게 중요했다. 이 대표는 결국 2007년 1월 레이캅을 개발했다. 3월부터 본격 시판에 들어가자 곧바로 인기를 모았다. 세계 최초 자외선 청소기 특허도 획득했다. 특히 해외에서의 반응은 엄청났다. 1년간 준비 끝에 2008년 영국 알레르기협회에서 알레르기 케어 기능을 인정받았고 프랑스 소비자협회의 베스트상품으로 선정됐다, 이듬해 영국 인디펜던트지로부터 세계 10대 청소기에 선정됐고 올 초에는 홍콩 최대 가전판매점에 납품을 시작했다.
지난 11일엔 국내 브랜드 최초로 일본 최대 홈쇼핑 자파넷다카타에서 론칭 방송을 했다. 자파넷다카타는 지상파와 케이블을 합쳐 43개 채널과 13개 라디오 채널, 인터넷쇼핑몰 등을 보유한 일본 최대 홈쇼핑 업체다. 레이캅은 소니 TV 및 니콘 카메라 등과 함께 방송을 탔다. 자파넷다카타의 다카타 아키라 사장은 “내가 한국의 부강샘스 공장을 방문해 품질과 기술을 확인했다. 일본 국민들의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며 이례적으로 직접 제품을 소개했다. 15분 만에 준비한 제품 500개가 매진됐다.
레이캅은 현재 세계 21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2015년까지 1억 달러 수출을 달성하는 게 목표다. 이 대표는 “남들과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며 “자체 브랜드로 새로운 시장을 꾸준히 개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