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동식물 種 복원 사업] 책에서만 보게 할 수 없다…후손에 ‘生物’을 물려주자
입력 2010-08-15 17:50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증식·복원 계획’은 인간의 탐욕 때문에 삶의 터전을 빼앗긴 야생 동·식물에 대한 뒤늦은 반성에서 출발했다. 물론 생물자원 확보라는 경제적 목적도 담겨 있다. 환경부는 야생 동·식물 54종을 복원대상으로 정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계획대로 진행되는 종(種)은 소수에 불과하다. 5년째로 접어든 복원 현장을 살펴봤다.
반달곰
국립공원관리공단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2004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반달가슴곰을 들여온 뒤 지금까지 29마리를 지리산에 풀어놨다. 5마리는 올무·덫에 걸리거나 농약을 먹고 죽었고 또 다른 5마리는 자연사했다. 귀엽다며 과자를 주는 등산객을 졸졸 따라다녀 회수된 개체도 4마리에 이른다. 현재 야생상태로 살고 있는 반달곰은 지리산에서 태어난 새끼를 포함해 16마리다.
처음엔 풀어놓은 곰들이 민가에 내려와 벌통을 훔치거나 부엌을 헤집는 등 주민들과 마찰을 빚었다. 강아지만한 새끼 곰을 도입해 자연적응 훈련을 시킬 때 사람과 접촉하면 화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엄하게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일부러 준 꿀을 먹으면 충격 받게 하는 방식으로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도록 했다. 덕분에 주민 피해도 부쩍 줄었다.
2012년까지 개체 수를 50마리 이상으로 늘려 안정적인 번식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공단의 목표다. 이를 위해 북한 중국 러시아에서 토종 반달곰과 혈통이 같은 곰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러시아 정부가 곰 반출을 승인하지 않는 쪽으로 정책을 바꾸면서 일이 틀어졌다. 한국의 도입 소식이 전해지면서 중국 현지 곰 가격이 폭등했다. 결국 공단은 제3의 기관을 통한 도입을 추진해 추석 직후 반달곰 6마리를 국내로 들여오는 작업이 성사 단계다.
산양
백두대간에 있는 월악산과 설악산은 산양의 무대다. 깎아지른 절벽에서 생활하는 산양은 무리가 급격히 작아지고 생활권이 고립돼 근친교배에 따른 유전적 열등화 현상이 우려됐다. 산림청은 1994∼1998년 월악산에 산양 3쌍을 풀어놓았다. 국립공원관리공단도 2007년 강원도 화천지역에서 도입한 산양 10마리를 월악산으로 옮겼다. 근친교배를 막고 서식권을 넓혀 자연 상태의 다른 산양과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12월 월악산에서 산양 새끼 2마리가 태어났다. 이 가운데 1마리는 2007년 풀어놓은 어미가 낳은 것으로 판명됐다. 공단은 월악산 산양이 계속 명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추가로 다른 지역의 산양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설악산∼오대산∼월악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에 산양 생태축을 복원할 계획이다.
황새
천연기념물 199호이며 멸종위기종 1급으로 지정된 황새는 충남 예산군에 새 살림을 차릴 준비를 하고 있다. 교원대 생물교육과 박시룡 교수가 이끄는 황새복원센터는 96년 황새 복원에 착수했다. 산업화 이전까지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황새는 농약 사용으로 먹잇감이 줄어들며 갑자기 사라졌다. 센터는 100마리가 되면 황새를 방사할 계획인데 현재 98마리로 식구가 불었다.
규모로는 방사를 눈앞에 둔 시점이지만 과제가 있다. 황새를 풀어놔도 농약에 오염된 먹이를 먹고 폐사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센터는 예산군과 함께 지역 주민에게 무농약 농법을 권장하고 있다. ‘황새의 춤’이라는 지역 브랜드가 친환경농법 작물의 매출을 높여줄 수 있어 주민에게도 도움이 된다. 번식시설, 야생화 훈련장, 연구동, 방문자 교육시설 등을 지어야 하는 과제도 있다. 기획재정부는 아직 문화재청의 황새 관련 예산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 황새는 하루에 200㎞까지 거뜬히 날아가기 때문에 예산군을 벗어난 지역에서 먹이활동을 할 경우 농약에 중독될 수 있다. 날아가는 도중 송전탑과 전력선에 부딪힐 우려도 있다.
구렁이·남생이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강원대, 서울대공원과 협력해 멸종위기 1급 구렁이와 천연기념물 453호이자 멸종위기 2급 남생이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구렁이에 얽힌 다양한 전설이 전해지는 치악산에는 ‘멸종위기 토종 파충류 인공증식장’이 마련됐다.
지난해 월악산에서 데려온 구렁이 5마리는 새끼 25마리를 낳았고, 충남 태안에서 데려온 멸종위기 2급 표범장지뱀 20마리는 새끼 10마리를 낳았다. 현재 어린 뱀들에게 무선 발신기를 달아 시험 방사한 뒤 생활상을 추적하는 중이다. 남생이는 정확한 서식 분포를 파악하기 위한 연구용역이 진행 중이다. 서식지와 주변환경, 먹이활동, 산란지 등 기초자료가 확보되면 인공증식에 돌입해 시험 방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여우
78년 지리산에서 사체가 발견된 뒤 명맥이 끊긴 토종 여우도 복원이 추진되고 있다. 서울대 수의학과 신남식 교수는 2008년 중국을 통해 북한산 여우 10여 마리를 도입했다. 현재 서울동물원에 7쌍, 경북 영양군 여우증식센터에 2쌍이 살고 있다. 여우는 얕은 산자락에 살면서 쥐, 토끼를 잡아먹고 버찌 같은 나무열매도 먹는다. 야생으로 돌려놨을 때 양계장에 피해를 줄 수 있고, 주민이 기르는 개와 충돌할 수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덕유산 소백산 오대산을 중심으로 먹이자원을 조사하고 있다. 신 교수는 “민가 주변이 아니어도 여우의 먹이가 되는 설치류 동물이 충분해 전국 어디에나 방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정적인 서식여건을 유지하기 위한 개체 수 확보가 급선무다. 신 교수의 목표는 50마리 정도다. 여우는 2∼3월에 짝을 짓고 4∼5월에 5마리 안팎의 새끼를 낳기 때문에 번식에 성공하면 마리 수는 금방 늘어난다. 지난 5월 영양에서 여우 1마리가 임신했지만 출산 뒤 새끼들을 잡아먹어 증식에 실패했다. 하지만 내년에는 여우들이 도입 3년차가 되면서 안정을 찾아 번식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증식이 예정대로 이뤄지면 4∼5년 뒤엔 야생으로 돌려놓을 개체 수로 늘어날 전망이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