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신창호] 또 다른 역사, 브레히트 사망일
입력 2010-08-15 18:05
8월 15일의 우리 현대사는 지금 이곳 우리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일제 지배 청산의 날(1945년)이자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의 날(1948년)이기 때문이다. 1974년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북한간첩 문세광이 쏜 총탄에 맞아 서거한 날이기도 하다.
굵직한 우리 역사에 묻힌 또 하나의 역사가 있다.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사망일.
브레히트는 나치와 2차대전에서 살아남은 사회주의자였다. 그는 나치를 겪은 뒤 “인간의 인간에 대한 폭압을 해체할 대안은 공산주의뿐”이라고 선언했고 미국에서 보낸 3년을 “천박한 자본주의 경험”이라 폄하하기도 했다.
그는 종착지로 택한 동독에서 1956년 8월 15일 숨졌다. 죽기 전까지 그는 공산주의 체제의 선전가였다. 동독군이 서독으로 탈출하는 시민들에게 기관총을 난사할 때도, 동유럽 자유화 물결을 소련군이 짓밟을 때도, 동독정권이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위해 언론의 자유를 옭아맬 때도 반론은커녕 “대의를 위한 것”이라 옹호했다.
그런 그가 죽기 얼마 전 ‘후손들에게’라는 한 편의 시를 남겼다. ‘우리 시대의 모든 길은 늪으로 간다…우애의 터전을 마련하려 했지만 우리 스스로 친절하진 못했다…힘은 너무 약했다…목표는 아직도 아득히 멀다…’
이 시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마르크시즘과 사회주의를 택한 지식인이 그보다 더 큰 늪을 만났다는 환멸과 고백”이라는 것이다.
그가 그토록 옹호했던 공산주의 동독이 소멸하던 1989년 10월 6일, 당시 서독 최고 정론지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은 “브레히트가 직접 창단한 베를리너앙상블 극단이 드디어 동독정권 손아귀에서 벗어나 그의 작품들을 자유롭게 공연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그의 희곡과 연극이론은 1940년대부터 지금까지 서방 지식인의 전유물이었다. 그를 ‘위대한 현대의 셰익스피어’라거나 ‘현대문명의 날카로운 비판자’라 열광한 곳도 자본주의 국가에서였다. 그의 연극이론으로 무장한 할리우드 영화가 연일 제작되고 우리 연극계도 해마다 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아직 남은 공산국가 중국과 쿠바, 북한에선 브레히트 연극이 상연됐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이상향(理想鄕)’에서 자신의 존재조차 완전히 무시되는 이 현실, 죽은 브레히트가 깨어난다면 뭐라 할지 궁금하다.
신창호 차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