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行試 폐지 보완책 먼저 강구해야
입력 2010-08-13 21:53
정부가 그제 행정고시를 내년부터 폐지하고 2015년까지 5급 신규 공무원의 50%를 외부 전문가로 선발하는 것을 골자로 한 ‘공무원 채용제도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60여년간 지속된 공무원 채용 방식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행정고시는 관 주도 개발시대에 우수 인재의 공직 등용문으로서 큰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고시 출신들의 고위직 독식과 이에 따른 순혈주의가 공직사회의 무사안일과 집단이기주의를 조장하고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등 폐해가 적지 않았다. 정보화·전문화 시대를 맞아 다양한 인재 발굴 통로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정부 방안은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 행정의 중추인 5급 공무원 선발 제도를 바꾸면서 사전에 공론화 과정을 통한 검증 작업을 거치지 않아 적지 않은 부작용이 우려된다. 이미 내년도 시험계획이 발표된 상황에서 당장 내년부터 행정고시를 5급 공채로 대체하고 30%를 외부 전문가로 선발하면 많은 고시 준비생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더 중요한 문제는 필기시험 없이 서류전형과 면접만으로 외부 전문가들을 뽑으면서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외부 전문가 선발이 자칫 변호사·의사 등 전문 자격증이나 박사학위 같은 고비용의 ‘스펙’을 쌓을 능력이 있는 기득권층에 유리할 경우 계층 간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 사법시험이 로스쿨로 대체되고 행정고시가 폐지되면 사회적 신분상승 통로가 더 좁아져 흔히 말하는 ‘개천에서 용 나올’ 가능성이 희박해지기 때문이다. 또 외부 전문가들이 일정 기간 경력을 쌓아 몸값을 올릴 생각으로 공직에 진출한다면 이들에게 국가관과 사명감을 바탕으로 한 희생과 봉사정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 암기 위주의 시험에 합격한 것으로 평생 자리를 보장받는 ‘철밥통’의 공직사회를 혁신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재 선발로 경쟁 체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 예상되는 부작용을 철저히 점검해 심사위원회 구성이나 평가방식 등 제도 수립과 운용에 만전을 기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