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과정 최대 난제는 금강송 찾는 일 15년전부터 소나무 직접 길러 큰 도움”

입력 2010-08-13 18:28

경복궁과 광화문 복원공사에서 도편수로 작업을 진두지휘한 신응수 대목장(70·중요무형문화재 74호)은 광화문 개방을 이틀 앞둔 13일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다. 20년의 경복궁 복원공사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현장 지휘자로 기쁨과 설렘이 교차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는 궁궐 건축과 복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일인자다. 1970년 불국사 복원에 부편수로 참여했고 75년 수원 성곽 복원 때부터는 도편수로 작업을 이끌었다. 이후 창경궁과 창덕궁의 주요 전각을 보수하고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과 필동 한국의집, 경주 안압지 건물 등을 맡았다.

“복원이라는 게 옛날 그대로 되돌린다고 생각하지만 정확한 실측 자료가 없으면 무척 힘들어요. 무조건 도면대로 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광화문 복원공사 도면에는 서까래 크기가 15㎝로 가늘지만 일제 때의 실측을 기초로 21㎝로 하니 더 튼튼하고 아름다워졌다는 것이다.

광화문 복원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금강소나무를 찾는 것이었다. 그는 “적송(赤松)이라 불리는 금강소나무는 짜임새가 있고 나이테가 촘촘해서 1000년 이상 가는 목재”라며 “15년 전부터 강원도에 땅을 마련해 금강소나무를 길렀던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그는 전국의 산을 답사하며 좋은 소나무를 찾는 일에 골몰했다. 청와대 청사를 지을 때는 라오스 나무로 하라는 지시를 받고도 비서관을 설득해 자신이 봐뒀던 강원도의 소나무로 작업을 마칠 정도였다.



이번 광화문 복원에는 공사 기간을 무리하게 단축하려고 설계를 바꿨다는 논란도 있었다. 신 대목장은 “올해 말까지 예정된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돼 완공 시기를 앞당긴 것”이라며 “설계도 더욱 튼튼한 궁궐을 짓기 위해 잡부 몇 명이 한나절이면 작업을 끝낼 수 있는 기존의 산자(散子) 방식에서 전문 목수 여럿이 달라붙어 며칠을 작업해야 하는 개판(蓋板) 방식으로 바꿨는데 오해가 많은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2008년 불탄 숭례문의 복원공사 도편수도 맡고 있는 그는 “이젠 숭례문 복원에 매진할 것”이라며 “언젠가 황룡사 9층 석탑도 다시 세우고 싶다”고 밝혔다. 목조건축 박물관을 지어 전통건축 후예를 양성하는 것이 꿈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이광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