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사·외교관·홍보 전문가 역할까지 ‘멀티 플레이어’ 요구받는 美 지휘관
입력 2010-08-13 18:28
전쟁에서 ‘이긴다’는 건 어떤 걸까. 중동에서 9년째 전쟁을 수행 중인 미국은 이 같은 고민에 빠졌다. 뉴욕타임스(NYT)는 12일(현지시간) 미군이 승전(勝戰)의 개념을 바꾸면서 지휘관에게 요구하는 자질도 크게 달라졌다고 보도했다.
◇“지휘관은 5종경기 선수”=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 사령관은 NYT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오늘날의 지휘관은 5종경기 선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투에서 승리하는 군인, 현지 정부와 지방 소수민족 자치정부 간 미묘한 관계를 숙지한 외교관, 사회 재건과 개발을 위한 행정가, 워싱턴DC의 정계를 설득하는 정치인, 언론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현지 구호단체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홍보전문가의 역할까지 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이젠하워 장군의 임무가 히틀러를 무찔러 독일군을 패배시키는 것이었던 것과는 엄청난 차이다.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미군은 적군을 물리친 뒤에도 길고 힘든 전투를 치르고 있다. 이미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시 이라크에서 승리를 선언했고, 이라크에서 올해 민주적 선거가 치러졌는데도 미군은 아직도 전장을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프간에서 미군의 가장 큰 과제는 현지 정부의 부정부패를 방지하는 것이다. 알카에다와 탈레반은 여전히 주민들을 속박하고 있고, 이슬람 과격파는 인터넷 여론전을 통해 미국인까지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워싱턴DC 정계에서는 미군 철수시기와 예산 지원이 논란이고, 국제사회에선 전쟁의 정당성을 둘러싼 끊임없는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아프간 카불에서 평화체제 수립 임무를 맡았던 데이비드 바노 전 미군 중장은 “오늘날 전쟁의 최종 승리를 위해선 군 외부 인사와의 관계 구축이 중요하다”며 “미 대사와 구호단체는 물론이고 현지 정부, 미 의회, 언론과의 관계 증진에 힘써야 한다”고 전했다.
◇바뀌는 장교 양성 교육=미군은 이미 장교 양성 교육과정에 이 같은 요소를 포함시키고 있다. 퍼트레이어스 사령관은 전장에 파견되기 전 육군 교육과정을 개편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전투 능력 배양에 초점을 맞춘 교육 내용에 민간인 보호와 현지 정부 재건까지 집어넣었다. 퍼트레이어스 사령관은 “오늘날 미군은 복잡다기한 능력을 요구받고 있다”며 “테러조직에 맞서 승리하기 위해 그만큼 많은 도전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더욱 중요한 건 전쟁의 속도다. 이 모든 일을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완수해야 한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언론은 비판적으로 돌아서고, 정치권의 협력을 얻기 어렵게 되며, 현지 사정은 악화된다. 태평양 사령부와 중부 사령부에서 근무했던 퇴역장군 윌리엄 팰론은 “현대의 지휘관은 하루 24시간, 1주일 7일, 1년 365일 어느 한 시간도 자신의 임무에 소홀할 수 없다”며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우선인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는 게 지휘관의 가장 큰 고충”이라고 말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