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회생 박영준 “자원외교 전념”… 靑 “입장 없다” 배경 설명못해
입력 2010-08-13 18:16
이번 차관 인사의 하이라이트는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의 거취 문제였다. 야당은 물론 친이계 소장파 의원들까지 경질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박 차장은 본인 말대로 ‘차관급에서 정식 차관’으로 승진했다. 주특기인 자원외교 분야에서 마음껏 역량을 펼칠 기회를 줬다는 점에서 날개를 달아준 격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박 차장은 13일 오후 차관 인사가 발표된 직후 총리실 기자실을 찾았다. 소회를 묻자 “담담하다”고 했지만 표정은 밝았다. 박 차장은 “대통령께서 에너지 자원에 대해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집권 후반기를 맞아 에너지 자원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성과를 내라는 뜻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지식경제부 제2차관은 자원외교와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로 ‘미스터 아프리카’로 불릴 정도로 자원외교 분야에 열정과 능력을 갖고 있는 박 차장에게 적합한 자리라는 평이다.
친이계 소장파의 중심인 한나라당 정두언 최고위원과의 권력싸움 2라운드에서 밀리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박 차장은 2008년 6월 정 최고위원으로부터 ‘권력사유화의 핵심’으로 지목당한 뒤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에서 물러나 7개월간 야인생활을 한 전력이 있다. 지난해 1월 총리실 국무차장으로 재기한 뒤 1년6개월여 만에 다시 정 최고위원으로부터 국정 농단 세력의 ‘몸통’으로 지목돼 위기에 몰렸지만 이번에는 방어에 성공한 셈이다.
세종시 수정안 부결,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등 총리실 내 악재들로 최근 한 달 새 총리를 포함해 차관급 이상 4자리 중 정운찬 국무총리, 권태신 국무총리실장, 조원동 국무총리실 사무차장이 모두 경질됐지만 박 차장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이상득계 핵심 의원은 “인재를 버리기는 쉬워도 만들기는 어렵다”며 “이런저런 논란이 있어도 여기까지 키워놓은 인재인데 싹 자르듯 도려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박 차장이 차관급으로 자리를 수평이동하면서 집권 후반기 청와대의 국정쇄신 카드는 희석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박 차장의 차관 내정 배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별도의 공식적인 입장이 없다”고 답했다. 핵심 경제부처의 차관으로 임명하면서 청와대가 임명 배경조차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 차장은 당분간 중앙정치 무대로부터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정중동(靜中動)의 행보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자원외교차 잦은 해외 출장을 다니며 불법 민간인 사찰 수사 등 자신을 둘러싼 논란이 잦아들기를 기다릴 수도 있다.
박 차장은 “(나를 둘러싼) 여러 가지 오해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 밝혀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집권 4년차를 맞는 내년, 현 정부의 추진동력이 떨어질 때 박 차장이 권력의 전면에 재등장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