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6일 개봉 ‘더 도어’ 과거로 돌아가 딸을 살렸다… 그리고 나를 죽였다
입력 2010-08-13 18:27
‘과거로 돌아간다’는 판타지는 기존의 많은 영화들이 시도했던 작업이다. 2004년 맥키 그루버·에릭 브라스 감독 작품 ‘나비효과’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그 판타지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도 알고 있으리라.
‘더 도어’의 판타지는 그에 멈추지 않고 ‘과거의 나와 완전히 다른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살해한다’는 충격적인 설정을 시도한다. 실수로, 혹은 헝클어진 현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간 터널을 지나 과거로 되돌아온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히 삶을 영위하기 위해 예전의 자신을 살해하는 것이다.
다비드(매즈 미켈슨 분) 역시 마찬가지다. 잘 나가는 화가였던 그가 어느 날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우는 사이 어린 딸은 수영장에 빠져 죽었다. 이 일로 아내와도 헤어지고 5년을 폐인처럼 보내던 그는 우연히 시간의 문을 통과해 딸이 죽던 날로 되돌아온다.
그는 딸을 살리는 데 성공하지만 5년 전의 자신과 부딪쳐버리고, 우발적으로 자기 자신을 죽인다. 이 일로 다비드는 행복을 되찾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뭔가를 눈치 챈 듯한 딸과 주변인들의 복잡한 시선. 사건은 점점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빠져든다.
인간에게 실수를 만회할 두 번의 기회는 과연 주어지는가. 자신 외에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 다비드는 제2의 범죄를 저지르게 되고, 두 번째 인생을 살게 되어도 죄책감과 의심의 지옥에서 탈출할 방법은 없다. 과거를 되돌린다 해도 죄를 지은 인간은 결국 죄인일 뿐.
‘더 도어’는 피와 비명, 잔혹한 영상으로 도배되지 않은 영화도 숨 막힐 듯한 공포와 스릴을 안겨줄 수 있다는 평범한 진실을 일깨운다. 기존 판타지 영화들과는 달리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완전히 분리된 존재로 설정한 데서 나오는 신선함과 강렬한 주제의식, 군더더기 없이 반전을 거듭하며 결말을 향해 치닫는 위태로움, 관객의 예측을 불허하며 조용하고 잔잔하게 전개되는 영화는 눈을 뗄 수 없는 매력으로 가득 차 있다. ‘더 도어’는 2010년 숱하게 개봉한 판타지·스릴러 중 단연 빛나는 작품이다.
‘007 카지노 로얄’의 악역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매즈 미켈슨은 절제된 대사와 내면 연기를 통해 죄의식과 괴로움, 사랑과 불안을 오가는 남자 다비드 역할을 흠 없이 표현해냈다. 다비드의 딸 역할을 맡은 아역배우 발레리아 에이젠바르트의 연기도 사랑스럽다. 죄의식과 공포, 불안을 이야기하면서 비춰지는 한적한 교외 풍경 위 그들의 드라마를 놓치지 말 것. 18세 관람가. 26일 개봉.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