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찬규] 국제법에 비친 한·리비아 외교갈등
입력 2010-08-12 18:37
지금 한·리비아 간에는 심상찮은 외교 갈등이 있다. 정부의 공식 발표가 없어 정확한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나온 단편적 언론 보도를 통해 파악한 갈등 경위를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6월 18일 리비아 주재 한국 외교관 한 사람이 ‘신분과 양립할 수 없는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추방됐고, 리비아는 주한 경제협력대표부를 일방적으로 철수시켰다. 리비아 거주 한국인 2명을 불법 선교 혐의로 구속해 영사접근(領事接近)을 허용하지 않다가 뒤늦게 11일 영사면담을 허용했고, 한국 측 대통령 특사와 실무대표단의 리비아 방문이 있었으나 갈등 해소 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리비아 정부가 100억 달러 규모의 무상 원조를 요청했고, 이것이 정해진 기일 내에 수용되지 않으면 리비아 주재 한국 기업이 큰 봉변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기사가 리비아 언론에 실리기도 했다.
추방 제외한 조치는 법 위반
‘신분과 양립할 수 없는 활동’이라 함은 외교관이 주재국에서 저지른 간첩행위 등 불법 행위를 지칭하는 외교상의 완곡어법이다. 한·리비아 간 외교 갈등은 리비아가 ‘신분과 양립할 수 없는 활동’을 한 외교관을 추방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하지 않고 추가적 대항조치를 획책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외교관계는 1961년의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의해 규율된다. 이 협약에는 접수국의 ‘제반 사정’(conditions and developments)을 살펴 본국에 보고하는 것이 외교관의 임무라는 규정(제3조1d)이 있고, 접수국은 ‘언제든지 그리고 이유를 설명해야 함이 없이’ 주재 외교관을 추방할 수 있다는 규정(제9조1)도 있다. 따라서 한국 외교관의 행동은 임무수행에 불과한 것이었고 리비아의 대응에도 법적 하자는 없는 것이었다.
문제는 리비아가 취한 추가적 대항조치인데, 현 국제법상 리비아의 이같은 선택이 적법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점거 사건에 대한 1980년 5월 24일의 국제사법재판소 판결이 명확한 대답을 주고 있다.
이 판결은 빈 협약을 ‘자기완결적 제도’(self-contained regime)라고 했다(판결 제86항). 이것은 외교관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빈 협약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해야 하며 다른 제도를 원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이 판결에 따르면 빈 협약 상 외교관에 대한 제재는 개인적 위법 행위에 대해서는 해당 개인을 추방하고 공관 차원의 위법 행위에 대해서는 파견국과의 외교관계 단절을 통해 공관원 전원을 추방하는 두 가지 방법이 전부라는 것이다(판결 제85항).
명분 있어야 국가 위신 살아
이 같은 외교관계에 관한 국제법의 규칙을 리비아의 경우에 적용하면 리비아는 외교관 추방으로 종결해 버려야 할 문제에 대해 추가적 대항조치를 획책함으로써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중대한 위반을 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리비아는 또한 구속 중인 한국인에 대한 영사접근을 상당 기간 외면함으로써 1963년의 ‘영사관계에 관한 빈 협약’ 제36조에 대해서도 중대한 위반을 하고 있다. 2001년에 채택된 ‘국가 책임에 관한 조문안’에는 대항조치가 인정되는 경우라도 그것이 기본적 인권의 침해를 가져오게 될 때에는 이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제50조)이 있다.
외국인을 구속했을 때 영사접근을 허용해야 함은 기본적 인권이 요청하는 바이며 이것은 ‘라그랑 사건’ 및 ‘아베나 사건’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 판결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국가 위신을 드높이는 길이 편의주의에의 의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만사를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는 데 있음을 양국은 알아야 할 것이다.
김찬규 경희대 명예교수국제해양법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