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軍 의도대로 감춰지는 시대 아니다

입력 2010-08-12 18:39

군이 또 한번 신뢰를 잃었다. 북한이 9일 발사한 해안포 110여발 가운데 10여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왔는데도 대응사격을 하지 않았고, 합동참모본부는 넘어온 사실까지 부인했다가 다음날 번복했다. 바다에서 육안으로 낙하지점을 측정하는 게 부정확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으나 수백m라면 모를까 1∼2㎞ 남쪽에 떨어졌다. 군의 설명이 오락가락하자 정권의 안보 체질이 허약해서 빚어진 일이 아닐까라는 의구심까지 생긴다.

올 초 북한이 해안포 400여발을 쏘자 합참은 NLL을 넘으면 즉각 대응사격하겠다고 말했다. 천안함 사건 후 이명박 대통령도 군사 도발에 단호한 대응을 여러 차례 다짐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이 벌어지자 군의 대응은 무력했다. 더욱이 서해 합동훈련 종료 30분 만에 일어난 도발을 묵과했으니 군 위신은 물론 훈련 의의까지 무색해졌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도발 대응 기준이 분명치 않았다는 점이다. 과잉 대응해서는 안 되지만 만만하게 보이면 더 큰 도발을 부른다. 군사 긴장을 높이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정치적 판단을 할 수도 있지만 이번 경우는 해안포가 사상 처음 NLL을 넘어왔다. 그것도 의도적으로 조준 발사했다. 적어도 북쪽 해역을 향해 대응사격 정도는 했어야 했다.

일이 터지면 장막부터 치는 군의 은폐 체질이 천안함 사건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은 건 큰 문제다. 포탄이 NLL을 넘었다는 관측 보고가 무시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직접 피해가 없으므로 군사 긴장을 높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면 합참의 오판이다. 보고를 받은 상부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면 정권의 나약한 안보관을 비판해야 마땅하다.

군사 판단과 정치 판단 사이에 끼어 있는 군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 때부터 번복이 거듭됨으로써 군 발표는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풍조를 만든 것은 큰 잘못이다. 아직도 천안함 재조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지금은 군에서 벌어지는 일을 외부에 차단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고질이 된 은폐 체질을 고치는 일은 군의 시대적 과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