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에 ‘면죄부’ 논란… 여권은 집안싸움 불씨
입력 2010-08-12 18:25
민간인 불법 사찰의 ‘몸통’으로 지목돼 사퇴 압력을 받던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 다시 살아나는 분위기다. 검찰의 중간 수사 발표 결과 일단 ‘면죄부’를 받았고,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와 박 차장의 우호적 관계도 유임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하지만 야당은 물론 여당 내 친이계 소장파 의원들이 박 차장에 대한 의혹을 거두지 않고 있어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다.
박 차장은 김 총리 내정 직후 부하 직원에게 “(내가) 해외에 출장갈 일이 있으면 정상적으로 진행시키라”고 지시한 것으로 12일 알려졌다. ‘미스터 아프리카’로 불릴 만큼 아프리카 자원 외교 특사로 활약했던 박 차장이 조만간 있을 차관 인사와 관계없이 현 위치에서 소임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박 차장이 김 총리 내정자와 1992년 신한국당 의원 보좌관 동기라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총리실 관계자는 “지난 9일 김 내정자와 총리실 간부들의 첫 상견례 자리에서 둘 사이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전했다.
지난달 영포(목우)회 인사개입 의혹 등 야당으로부터 국정 농단 사건의 핵심으로 지목되면서 사퇴 압력을 받던 때에 비하면 주변 상황이 크게 나아진 것이다.
총리실 내부에서도 박 차장 연임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 박 차장이 ‘왕(王)차관’이라는 별명답게 각 부처 간 민감한 업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는 이유에서다. 부처 간 이견으로 10여년간 결론을 내지 못했던 익산 왕궁축산단지 개선 대책은 지난 3월 박 차장이 왕궁환경개선협의회 위원장으로 선임되면서 단 4개월 만에 결론이 났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정부 관계자는 “박 차장의 교통정리 능력에 모두 혀를 내둘렀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차장을 둘러싼 논란은 완벽하게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검찰 수사가 몸통인 박영준 차장과 그 윗선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종착역에 도달하지 못한 채 간이역에 내린다면 국정조사와 특검을 요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나라당 정두언 최고위원과 남경필 정태근 의원도 한 목소리로 사찰의 배후를 밝히라고 검찰을 압박하고 있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집권 후반기의 새 진용을 짜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이 총리 교체 카드까지 쓴 마당에 박 차장을 유임시킨다면 국정쇄신 효과가 희석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때문에 박 차장의 거취를 둘러싼 정치권 논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