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찔한 檢 “고강도 보강수사”… 여야 없이 질타 이어지자 긴장
입력 2010-08-12 21:57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들까지 수박 겉핥기 수사를 질타하자 검찰이 긴장 속에 정치권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검찰은 보강 수사를 위해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메신저로 지목된 진모 전 기획총괄과장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이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 부인 사건을 뒷조사한 김모 경위를 12일 체포한 것도 사찰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당 국회의원의 반발을 의식한 측면이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사건이 여당 내 권력투쟁으로 비화돼 파장이 커질 경우 예기치 못한 유탄을 맞을 수 있다며 보강 수사의 강도와 수위를 조절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여당 의원 입에서 ‘정치 검사’ 비슷한 발언까지 나오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여당 의원들마저 연일 검찰에 직격탄을 날리게 된 근본 원인을 검찰이 스스로 제공했다는 지적이 많다. 검찰이 민간인 불법 사찰 배후를 찾아내지 못한 뒤 내세운 가장 큰 변명은 지원관실 컴퓨터 하드디스크 훼손이다. 물적 증거가 없어 윗선 또는 비선라인 수사 진전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컴퓨터 하드디스크는 지원관실이 어떻게 운영됐는지 말해줄 핵심 증거였다. 모든 행정기관 문서는 컴퓨터로 작성되므로 하드디스크를 들여다보면 지원관실이 어떤 사람을 내사했고, 그 결과를 누구에게 보고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은 하드디스크가 누군가에 의해 깨끗하게 지워진 뒤 압수수색을 하겠다고 지원관실에 들이닥쳤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 구성 나흘 뒤인 지난달 9일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지원관실에서 하드디스크 7개를 압수했는데 4개는 자성이 강한 물질로 손상돼 아예 구동 불능이었다. 나머지 3개는 ‘이레이저 프로그램’으로 지워져 있었다”고 밝혔다.
검찰은 사찰을 담당했던 지원관실 산하 1∼7팀 가운데 1팀에 대해서만 압수수색을 했다. 다른 팀에서 사찰이 이뤄졌을 가능성은 애초부터 수사 대상이 아니었다. 검찰이 윗선 의혹을 조사하겠다며 청구한 이영호 전 비서관과 이인규 전 지원관의 개인 이메일 압수수색영장은 소명이 부족해 법원에서 기각됐다.
검찰 안팎에서는 ‘하드디스크 내용의 폭발력’을 거론하며 검찰의 소극적 수사 의지와 연결시키는 시각이 있다. 이번 수사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증거였던 하드디스크가 누구의 지시로 훼손됐는지 밝혀내고, 실제 삭제 행동에 옮긴 사람을 불러 조사하면 진짜 배후가 드러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지난 11일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누가 하드디스크를 삭제했는지 밝히지 못했다.
이용훈 기자 co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