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진홍] 대통령 마음이 바뀌었지만…

입력 2010-08-12 17:43


“MB는 친서민의 진정성 보이고, 대기업들은 사회 공헌 활동 더 늘려야”

이명박 대통령과 기업의 로맨스는 집권 초기인 2008년 3월이 절정이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해온 이 대통령이 기업인들의 애로사항을 직접, 언제든지 듣겠다며 소위 MB폰이라는 핫라인을 개통한 것이다. 기업인들이 반색한 것은 물론이다. 젊은 연인들이 서로 휴대전화에 상대의 번호를 저장하며 사랑을 확인하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그로부터 1년여가 흐른 지난해 6월 하순 이상기류가 생겼다. 이 대통령이 느닷없이 친서민 드라이브를 걸었다. 시장 방문 등을 통해 서민들과의 접촉면을 늘렸다. 기업은 후순위로 밀렸다. ‘부자를 위한 정권’이라는 일각의 비난이 부담스러운 듯했다. 친기업적 발언은 급격히 줄었다.

또다시 1년여가 지난 요즘, 이 대통령과 대기업 관계는 악화 일로다. 이 대통령은 공개석상에서 수차례 대기업을 나무랐다. 대신 서민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다. 장관들과 여당 정치인들도 가세했다. 이에 대기업은 ‘너나 잘 하세요’라며 맞섰다. 지금은 다소 소강국면이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냉랭한 기운이 가득하다. 때마침 검찰이 대기업에 수사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밀월이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때 열애에 빠졌다가 시들해진 연인들 가운데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고약한 경우처럼 대통령과 대기업 간에도 유사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은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등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반면 대기업은 못한 게 뭐 있느냐며 갑자기 서민 쪽으로 ‘변심(?)’한 대통령에게 서운함을 표출하고 있다.

이쯤에서 감정을 추스르고 냉정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상대의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자성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 같다.

이 대통령의 경우 느닷없이 대기업을 공격하고 나선 것은 신중치 못했다. 그래도 한때는 남다른 애정을 과시하던 사이였는데, 하루아침에 도둑 취급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정책기조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서 ‘서민이 행복한 나라’로 바뀐 점에 대해서도 설명이 충분치 않다. 최고 권력자의 의지가 정책 결정과정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대통령 중심제라지만, ‘개인적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

그렇다고 대기업과 완전히 결별하려는 것 같지는 않다. 오는 광복절 때 경제인들이 사면될 것이라는 소식은 이를 시사한다. 서민들이 피부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정책들이 나온 것도 아니다. 7·28 재·보선이 끝난 직후 공공요금을 올리겠다고 발표한 것은 친서민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때문에 야당은 “무늬만 친서민 아니냐”고 의심한다. 기업도, 서민도 모두 놓쳐버리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지 우려된다.

대기업의 위력은 막강하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집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은 거의 대기업이 생산한 것이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쓰는 컴퓨터나 노트북, 그리고 휴대전화 역시 대기업이 만들었다. 취업 지망생과 그 부모들의 꿈은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에다 대기업이 지은 장례식장에서 삶의 마지막을 장식하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대기업에 의존하고 있다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은 상태다.

사회가 없으면 대기업도 없다. 환경 파괴와 탈세, 부정부패 등 기업 활동의 부작용에 대한 관심도 계속 커지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까닭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공론화된 것은 1953년 미국 뉴저지 고등법원이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을 법적으로 인정한 것이 계기였다. 그 이후 서구의 많은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 이행에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다. 기업 이미지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에 공헌하는 대기업이 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대통령이 지적하기 전에 대기업 스스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 노력했어야 했다. 사회적 책임 이행은 기업 스스로의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다.

김진홍 편집국 부국장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