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마지막 공주’ 17세에 치매라니…
입력 2010-08-12 17:58
덕혜/글 최모림·그림 임지영/도서출판 박물관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외롭게 생을 마감했던 덕혜옹주의 삶이 동화로 옮겨졌다. 고종이 환갑나이인 61세에 궁녀 양귀인 사이에서 딸을 얻은 건 조선왕조가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1910년) 2년 뒤인 1912년 5월 25일의 일이었다.
“‘아버지의 나이 환갑에 태어난 자녀는 그 아버지를 똑같이 닮는다’고 하는 옛말처럼 고종 임금과 붕어빵처럼 닮아있었습니다. 나라를 잃고 종이호랑이로 불리고 있던 고종 임금의 얼굴에도 오랜만에 웃음이 만들어졌습니다.”
고종에게는 네 명의 딸이 있었지만 모두 한 살도 안 돼 죽어서 덕혜옹주는 고종에게 외동딸이나 마찬가지였다. “괜찮다. 어서 옹주에게 계속 젖을 먹이도록 해라. 난 옹주가 그대로 자는 모습을 보고 싶구나.”
그 옛날, 유모가 임금 앞에서 드러누워 있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옹주에 대한 사랑은 고종을 임금이 아닌 한 아버지로 변화시켰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모든 날개를 꺾인 채 일본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다 결국 고종이 독살 당하자 덕혜옹주는 오빠들인 순종이나 영친왕과 마찬가지로 처참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의 불길한 예감대로 일본으로 끌려가 일본왕족과 귀족들이 다니는 동경학습원에 다니게 된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은 그녀가 교실 뒤에 비치해 놓은 물 대신에 직접 싸온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며 그 이유를 물었다. “저는 식수도 마음 놓고 마시지를 못합니다. 독이 들어 있을까봐 마시지 않습니다. 전 아바마마처럼 또 오빠처럼 독을 먹고 죽거나 잘못되는 것이 무섭습니다.”
순종 임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영친왕 부부와 함께 귀국한 덕혜옹주는 조선에 몇 달을 머무는 동안에도 어머니를 만나지 못한다. 옹주의 공부에 방해된다는 이유였다. 그로부터 3년 뒤 어머니 복녕당 양귀인은 딸을 그리워하며 숨을 거뒀으니 이날부터 덕혜옹주는 차라리 미치기를 원하게 된다. 결국 갓 열일곱 살 나이에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걸리는 ‘조발성 치매증’으로 10년 이상 정신병원에서 감금생활을 해야 했으니 대한제국과 덕혜옹주의 운명은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동시와 함께 하는 조선의 마지막 공주’라는 부제답게 김소월, 윤동주, 윤석중, 박홍근, 한정동 등이 쓴 동시가 장면마다 실려 있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