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의 이건 뭐야?] 강용석 모멘트
입력 2010-08-12 18:00
여성비하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징계 결정은 9월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 한다. 과거 여기자 성추행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최연희 의원이 멀쩡히 4선에 성공했듯, 이번 일도 시간이 좀 지나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슬 넘어가고야 말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든다. 정치인들이 다 그렇지, 한나라당이 하여튼 문제야, 하는 건 쉽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저 정도 성희롱 발언을 안 들어 본 대한민국 여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성희롱 발언, 뭐 이런 건 딱딱하니 ‘강용석 모멘트’라고 부르자. 이런 ‘강용석 모멘트’를 나 역시 수도 없이 겪었다. 언니, 언니 하고 부르는 건 양반이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다 보면 엉덩이 툭툭 치는 할아버지 손님도 적지 않다. 아저씨들이 언니 어쩌고 하는 게 불쾌한 이유는 그건 네가 무슨 일을 하든 너는 언니, 즉 여자라는 것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언니 다음에는 언제나 반말이다.
강 의원이 이런 말 이번에 처음 한 것도 아닐 테고, 그의 동료 의원들도 그럴 것이고, 다른 정당이라고 ‘강용석 모멘트’가 없을 리 없다. 최 의원은 당시 ‘음식점 여주인인 줄 알고 그랬다’고 했는데 도대체 음식점 여주인은 그런 ‘최연희 모멘트’를 얼마나 겪었다는 이야기인가.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는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고 외쳤는데 글쎄, 한국은 확실히 성희롱의 제국이다.
성희롱은 피해자의 주관적 개념이다. 그런데 가해자도 얼마든지 주관적으로 나올 수 있다. 그리고 경험상 대부분의 성희롱 가해자는 매우 주관적으로 나온다. 그 주관에 따라 가해자가 발을 뺄 여지가 많으므로 피해자는 이중으로 힘들다. 일단 수치심과 불쾌감을 느껴서 기분이 더럽다. 용기를 내서 “나는 당신이 한 말에 성적 수치심과 불쾌감을 느꼈으니 사과하시오”라고 주장해 봤자 그냥 그 여자를 까다로운 여자 취급해 버리면 그만일 경우가 많다. 그냥 왜 너만 유난이야, 하고 따지고 드는 데 장사 없다. 같이 따지자니 안 그래도 속상한데 품까지 든다. 이쯤 되면 사과하라고 주장할 기력도 없어진다.
다음으로 피해자들의 지옥이 시작된다. 그 지옥은 내가 혹시 싸게 굴었나 하는 자기검열이다. 네가 별나게 군다고 큰소리로 주관을 피력하는 가해자의 당당함에 기가 질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하고 그냥 입 다물고 말게 되는 것이다.
이 정도로 개념들이 없으니 정부 차원에서 단기 신사학교라도 개설해야 한다. 그러면 무보수 조교 겸 실습 대상이 돼 민족을 위해 시간 좀 낼 용의가 있다. 아마 ‘불쾌하지 않게 여성을 칭찬하는 법’ ‘밥맛 안 떨어지는 농담의 실제’ 등의 강의가 개설될 수 있을 것이다. 강 의원 욕하는 그 사람들도 자기 모르는 새 수없이 ‘강용석 모멘트’를 일으킨다는 걸 잊지 마시길. 일단은 아무나 언니, 언니 하고 부르지들 마시라. 듣는 언니들 남몰래 속상하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