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제재동참 압력·이란 무역보복 경고 사이 딜레마… 정부, 멜라트銀 폐쇄 늦추며 속도조절

입력 2010-08-11 21:37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전방위적 제재에 직면한 이란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특히 우리 정부는 독자제재 동참을 요구하는 미국의 압력과 대대적인 무역 보복을 경고하는 이란의 압박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11일 “대이란 제재문제는 서두르지 않고 국제사회의 동향과 관련국들과의 충분한 협의를 거쳐 검토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정부 내에서 독자제재가 본격적으로 검토되던 것과 비교하면 기류가 달라졌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는 우리나라를 향한 워싱턴과 테헤란의 동시 다발적인 압력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이란이 충돌하는 지점은 미국이 핵개발 관련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의심하는 이란 멜라트은행의 서울지점 폐쇄 여부다. 이란은 우리나라가 미국의 요청대로 이 지점을 폐쇄할 경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이란 제재 결의 1929호를 넘어서는 독자제재로 간주, 이란에서 한국기업 및 제품을 퇴출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일단 정부는 10월 초 미국의 포괄적 이란 제재법 시행세칙이 나온 이후 독자제재 방안을 마련하는 쪽으로 속도 조절을 꾀하는 분위기다. 국제사회의 동향을 보면서 제재 수위를 정하겠다는 포석이다.

이른 시일 내에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의 폐쇄를 결정하기보다 핵개발 자금 지원 의혹에 대한 추가적인 증거와 정보를 수집하며 시간을 벌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이러한 신중 모드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이번 제재를 통해 이란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확실히 차단하려는 미국과 유럽의 의지가 확고한 까닭이다. EU는 이란의 핵무기가 유럽을 향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고, 미국은 핵확산 방지에 목표가 있다.

지난 6월 1929호 제재 결의가 통과될 당시 반대표를 던진 브라질이 대이란 제재에 동참하기로 한 것도 미국과 유럽의 압력이 거셌기 때문이다. 셀소 아모링 브라질 외무장관은 “브라질은 내키지 않지만 국제사회의 결정을 존중해 결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브라질 일간 폴랴 데 상파울루가 10일 보도했다. 영국은 대이란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경우 브라질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이라고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유엔과 미국의 이란 제재에 발맞춰 대이란 자동차 수출을 중단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도요타의 이번 결정은 일본의 다른 기업들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