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이임식 정운찬… “퇴장하지만…” 숨고르기
입력 2010-08-11 21:28
지난해 9월 보수 정권의 이명박 대통령이 평생 중도 노선을 걸어온 정운찬 국무총리를 전격 발탁할 당시 정치권은 크게 요동쳤다. 또 한 명의 차기 대선 주자가 등장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2007년 대선 과정에서 당시 집권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후보로 한때 거론됐던 인물이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뛰고 있던 이명박 대통령의 라이벌이었던 셈이다.
그런 그가 11일 10개월여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그것도 불명예 퇴장이다. 정 총리가 정치적 명운을 걸었던 세종시 수정안은 국회에서 부결됐고, 재임 기간 내내 여권 주류 측 견제로 제대로 된 인사 한번 해보지 못했다는 평가까지 들었다.
정 총리는 이날 이임사에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세대와 계층, 이념 간 갈등을 조정하는 균형추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지난달 공식 사의를 발표한 다음 미국의 한 대학에서 석좌교수로 초청하겠다는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당분간 휴식을 취한 뒤 내년 초쯤 향후 행보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 총리에 대한 애정도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지난 10일 “정 총리는 퇴임하지만 아름다운 퇴임”이라며 “새로운 출발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그를 예우해 정치적으로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는 비중 있는 자리를 생각하고 있다는 말도 있다. 정 총리가 주미대사로 검토되고 있다는 관측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여권 내 차기 예비주자로서, ‘잠룡(潛龍) 정운찬’의 미래는 아직 남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정 총리가 이임식에 앞서 세종시가 들어서는 충남 연기·공주 지역 8만3000여 가구에 편지를 보냈는데, 이를 두고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시각도 있다. 정 총리는 편지에서 “모두 고향을 사랑하는 뜻이야 다를 리 없었을 텐데, 방법에 다소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 정권에서 정치적 지분이 거의 없는 정 총리가 차기 주자로서 홀로서기에는 현실적인 벽이 높다는 견해가 여전히 대세다. 한 측근은 “당장 정 총리가 세를 불리거나, 유력 주자로 떠오를 가능성은 높지 않다”면서 “하지만 차기 대선의 시대정신이 그의 중도실용 노선과 맞아떨어진다면 의외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 총리는 총리실에서 준비한 관용차 에쿠스 대신 서울대 연구실 조교였던 이동훈 수행과장의 쏘나타를 타고 귀가했다.
이성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