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 눈물 씻는 그날까지 교회가 함께 하겠습니다”

입력 2010-08-11 20:47


8·15 대성회 조직위원, 정신대 피해 할머니 수요시위·쉼터 방문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게 있지요. 바로 할머님들께 우리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지금이라도 ‘지켜드리겠습니다’라고 다짐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11일 정오 주최한 930회 수요시위 현장에서 한국염 정대협 공동대표(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수요시위마다 이런 내용의 발언은 늘 있었지만 이번만은 조금 다르게 들렸다. 뒤를 이어 단상에 오를 순서자를 의식한 듯했다.

그 순서자란 바로 한국 교계를, 오는 15일 열릴 ‘한국교회 8·15 대성회’ 조직위원을 대표해 참석한 김삼환 목사(명성교회·조직위원회 대표대회장)다. 김 목사는 단상에 올라 바로 앞에 자리한 7명의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지금까지 싸워온 데 대한 존경의 뜻을 표하고, 일본의 책임 있는 사죄와 배상을 촉구했다.

평소 교회나 교계 행사들에서 김 목사가 발언할 때의 반응에 비하면 분위기가 한참 냉랭하다. 그도 그럴 것이 19년이나 지속된 수요시위에 여러 차례 동참해 오며 나름의 문화와 이해, 연대감을 쌓아 온 주요 참석자들에게 김 목사는 생소한 사람이다. 실제로 참가자들 서넛에게 김 목사를 아는지 물어보니 한 명이 “보긴 봤는데”라고 말끝을 흐렸을 뿐 나머지는 고개를 저었다.

김 목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한 마디 한 마디 힘을 주며 말했다. “여러분이 눈물과 원통함을 씻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일본이 머지않아 여러분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앞으로 한국 교회가 같이하겠습니다.”

이제 그 약속을 어떻게 지켜 기대치를 높이느냐는 과제가 한국 교회에 남겨졌다.

그에 앞서 오전 10시30분에 김삼환 목사와 성공회 박경조 주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권오성 총무,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 조성기 사무총장 등은 서울 충정로에 위치한 위안부 피해자 쉼터 ‘우리집’을 찾았었다. 이때의 분위기는 훨씬 화기애애했다. 이 쉼터에 머물고 있는 세 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기독교인인 영향이 컸다.

노령으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이순덕(93) 할머니는 김 목사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박경조 주교가 “다시는 이 땅에 참혹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약자가 희생당하지 않도록 한국 교회를 사용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때 할머니들은 ‘주여’ ‘아멘’이라고 호응했다.

“열세 살에 평양에서 전쟁에 끌려간 뒤 세상에 나서 사람이 할 일을 하나도 못하고, 부모 형제 다 이별하고 가정도 자식도 없이 살아왔다”는 길원옥(83) 할머니의 증언에 김 목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 아마 가장 먼저 오셔서 품고 위로하실 분들인데 한국 교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그동안 종의 길을 잘못 갔다”고 토로했다.

또 위안부 피해 역사를 후대에 알리기 위해 정대협이 추진 중인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건립이 아직도 사회적 편견으로 난관에 부닥쳐 있다는 말을 들은 김 목사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다소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김 목사는 “지금 준비 중인 오는 15일 ‘한국교회 8·15 대성회’를 통해 일본 정부에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약속했고 즉석에서 권 총무와 박물관 건립에 교계의 힘을 보태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방문단은 할머니들에게 LCD TV를 비롯한 선물과 위로금을 전달했다. 그러나 할머니들은 선물보다도 김 목사가 문을 나서면서도 누차 반복한 “앞으로 잘하겠습니다”라는 말에 기쁜 미소를 지었다.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