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찬희] 하우스 푸어가 본 DTI
입력 2010-08-11 17:39
2006년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값은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았다. 1주일에 1000만원씩 올랐다. 부르는 게 값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나돌았다. 하루라도 빨리 집을 사는 게 남는 장사였다. 중소기업에 다니던 김모(45)씨는 그해 2월 서울의 한 뉴타운 지역 아파트를 샀다. 은행 빚 2억원을 내고, 전세금에다 예·적금을 깨서 보탰다. 4억원에 산 집은 순식간에 8억원으로 ‘신분 상승’을 했다.
같은 해 3월 30일 참여정부는 총부채상환비율(DTI) 강화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급등하는 집값을 잡기 위해 돈줄을 바짝 죄기로 한 것이다. 부동산 거품, 가계부채 악화는 참여정부가 후반기 국정 운영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던 주제였다. 3·30대책은 투기지역의 6억원 초과 주택 DTI를 40%로 높였다. 시장은 정부 정책을 비웃었다. 온갖 편법이 난무하면서 폭등세는 6개월 이상 이어졌다. 뒤늦게 금융 당국이 창구지도에 나서면서 DTI는 자리를 잡았다. 집값도 안정세로 접어들었다.
김씨는 적절한 때에 집을 잘 샀다며 안도했다. 동시에 ‘이게 돈 버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친 김에 서울시내에 더 큰 평수로 새 아파트를 분양 받았다. 3년 뒤 입주할 때 살던 집을 팔면 목돈이 생기니 중도금 등을 대출로 돌려 막아도 충분히 남는다는 계산도 마쳤다.
하지만 2008년 계산에 없던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부동산 경기는 바닥을 쳤고, 거래는 실종됐다. 분양 받은 집에 입주해야 하는데 살고 있는 집은 팔리지 않는다. 급매물로 내놓았지만 6개월이 지나도록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다.
그야말로 하우스 푸어(House Poor) 신세다.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지만 은행에 갚아야 하는 원리금 부담 때문에 소비 수준은 최악이다. 김씨가 한 달에 갚는 은행 이자만 150만원에 이른다. 원금은 갚을 엄두조차 못 낸다. 김씨 같은 하우스 푸어는 198만 가구로 추정된다.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이자 부담이 커지고, 집값 하락이 가속화돼 하우스 푸어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최근 김씨에게 관심사는 DTI 규제 완화, 정확하게는 정부가 조만간 내놓을 부동산 거래 활성화뿐이다. 집 한 채 있는 중산층 혹은 서민이 분양 받은 아파트로 옮겨갈 수 있도록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 목청을 돋우며 맞장구를 친다.
그러나 현재 40∼50%인 DTI를 10% 포인트 올려도 가계부채 증가, 금융회사 부실화 우려는 없다는 주장엔 고개를 가로 젓는다. 빚을 더 낼 수 있게 해 막힌 부동산 거래를 뚫자는 주장은 어딘지 위험해 보인다고 했다. ‘이자 폭탄’이 얼마나 무서운지 지금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9일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이미 많은 하우스 푸어가 대출이자 증가에 짓눌리고 있다. 여기에 물가 불안은 하우스 푸어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물가가 오르면 금리가 오르고, 이자 부담이 늘면 부동산 가격은 더 급속하게 하락한다.
김씨는 정부가 DTI를 완화하든지, 세금을 깎아주든지 하루라도 빨리 부동산 거래를 살렸으면 한다. 동시에 지금 집값이 비정상적이고 더 떨어져야 거래가 살아날 것이라는 말에도 동의한다. 20년 가까이 직장을 다니며 모은 돈과 달리 한순간 부동산 투기로 벌었던 돈(숫자만 있을 뿐 한번도 손에 쥐어보지 못한 돈)이 얼마나 허망한지 깨닫고 있다.
딜레마를 풀 마지막 퍼즐 조각을 찾는 것은 정부 몫이다. 거래를 살리면서 시한폭탄 같은 가계부채를 악화시키지 않고 부동산 시장을 연착륙시킬 수 있는 묘안을 찾아야 한다. 또 수많은 ‘중산층 김씨’가 왜 하우스 푸어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지, DTI를 완화했을 때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를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한다. 김씨는 오늘도 출근 버스에서 ‘우울한 고민’에 빠졌다. 언제나 그렇듯 명쾌한 해답은 없다. 다만 DTI 완화는 최후의 극약처방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김찬희 경제부 차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