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기꺼이 군에 가는 청년들
입력 2010-08-11 17:39
15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후보자들은 본인이나 직계가족의 병역 문제를 놓고 치고받았다. 김대중·이인제 후보는 자신의 병역 시비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렸고, 이회창 후보는 아들의 병역 문제를 설명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후보 3인방이 난타전을 벌이는 것을 보고 유권자들은 울화가 치밀었을 것이다.
사회지도층 인사들과 그 아들들, 유명 연예인과 스포츠 선수들의 병역기피 문제는 끊이지 않고 국민들을 열 받게 했다. 지난 3월 천안함 폭침 사건을 논의하기 위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 등 5명이 군 미필인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됐었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10년 넘게 군 소집을 연기한 끝에 병역면제를 받았다가 지난달 당 대표 경선에서 경쟁자의 공격을 받았다.
1995년 4월쯤 중서부 최전방 무적태풍부대에서 ‘라이따이한’ 최모 일병을 만났다. 라이따이한으로는 처음으로 국군에 입대한 최 일병은 전쟁이 터지면 주력부대가 작전상 후퇴를 하더라도 진지를 사수해야 하는 대대에 배치됐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74년 3월 현지에서 선박기술자로 일하던 아버지 최모씨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최 일병은 베트남이 공산화되기 직전 우리 해군 전함을 타고 한국에 왔다. 혼인신고도 마친 최 일병 가족은 단란한 가정을 꾸렸으나 최 일병이 네 살 때 부모가 별거하고 중학교 2학년 때 이혼하는 바람에 아버지와 생이별했다.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최 일병은 “대한남아의 한 사람으로서 조국 수호에 앞장서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외국 영주권을 갖고 있는 34명이 조국에서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지난 9일 육군훈련소에 입소했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워싱턴대학에 다니던 조재영씨는 2008년 징병검사 때 시력이 좋지 않아 보충역으로 분류됐으나 시력 교정 수술을 받고 현역 판정을 받았다. 그는 21개월간의 학업 공백에 따른 부담을 무릅쓰고 입대를 자청했다. 조국을 지킨다는 보람과 함께 조국의 문화를 배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조국의 부름을 받고 병역의무를 준수하는 장정은 연 30만6000명에 이른다. 이들은 가장 중요한 젊은 시절을 조국에 바치고 있다. 사랑하는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치고 병역 기피자를 좋게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병역의무를 마쳤거나 군 생활을 하는 이 땅의 아들들과 조씨처럼 외국 영주권을 취득하고도 자원입대하는 장병들에게 무한한 찬사를 보낸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