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0년]전문가좌담 전문1
입력 2010-08-10 19:45
국민일보는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지난 3월 1일부터 6개월간 연재해 온 ‘잊혀진 만행… 일본 전범기업을 추적한다’ 기획 시리즈를 마무리합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언론사 최초로 집중적으로 파헤친 기획물입니다. 그동안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1부에서는 이제껏 일본 정부 책임론 아래 숨어 있던 재벌급 전범기업들의 만행을 해부했으며, 2부에선 한국에 다소 생소한 기업들의 인권 유린 실태를 추적했습니다. 3부에서는 시선을 일본 국외로 확장해 남양군도(南洋群島)와 러시아 사할린 비극의 현장을 취재했고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진 국내 동원 전체 현황을 단독 보도했습니다.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의 해결책을 찾기 위한 4부에 들어서면서 다시 독일과 중국 현지를 찾아 전후(戰後) 보상의 서로 다른 모델을 분석하고 제시했습니다.
마지막회로 일본 정부·기업들의 사죄와 배상 등 전반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전문가 좌담회를 마련했습니다. 정치권에서 강창일 민주당 의원, 학계의 김광열 광운대 동북아대학 학장, 법조계에선 대한변호사협회 일제피해자인권소위 위원장 최봉태 변호사, 그리고 정선태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강제동원조사위원회) 위원장이 참석했습니다.
좌담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본사 5층 대회의실에서 박정태 특집기획부장의 사회로 2시간30분 동안 진행됐습니다. 참석자들은 쉬는 시간 화장실도 가지 않고 열띤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인터넷 독자 여러분을 위해 최소한의 수정만 거친 좌담 전문을 게재합니다.
# 강제동원은 과거사가 아닌 현재의 문제
-일제 강제동원이 우리 역사에 남긴 상처와 후유증은 무엇인가.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하면 미래 한·일 관계의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부담이 된다.
△김광열 교수(이하 김 교수)=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해방을 맞이했을 때 ‘우리들이 받아야할 미수금 임금은 어떻게 돼냐’고 물었다. 일본 회사는 ‘귀국하면 나중에 차차 해결해 주마’ 이런 식으로 말했다. 굉장히 임시방편적 방식으로 말을 듣고 귀국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피해자들의 못 받은 돈, 개인 재산권인데, 그걸 찾는데 제대로 된 도움을 준 적이 없다.
한국 역사에서 강제동원을 당한 피해자는 말하자면 힘이 없는 민초들이다. 그 사람들은 조국을 되찾고 난 뒤, 자기의 재산권을 정부가 되찾아 주리라고 믿었는데. 그런데 정부에 대한 믿음이 약화된 것이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후유증으로 남았다.
얼마 전 고교 역사교과서를 봤다. 강제동원이 어떻게 기술돼 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딱 두 줄 밖에 없다. 보완 설명 없이 딱 두 줄이다. 국치 100년이라지만, 과연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정선태 위원장(이하 정 위원장)=2005년부터 강제동원 조사위원회가 가동돼 피해 진상조사를 해왔다. 어떻게 피해를 보셨는지, 그 정도는 어떤지, 경위는 어떤지 등에 대해 역사적 기록으로 조사해 남기는 작업을 5년 넘게 했다. 23만 건의 피해신청 가운데 14만 건을 처리하고, 현재 남은게 9만 몇천여 건이다. 강제동원된 숫자가 100만~150만 명인데, 그 가운데 국외 강제동원은 약 80만명으로 추산한다. 이 가운데 최소 23만명명 피해자에 대해서 진상조사를 마쳐 하나의 기록으로 남긴다는 의미가 있다.
위원회의 또다른 업무는 지원 분야다. 지금까지 약 6만명에 대해 지원심사를 마쳤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 2300억원을 지원했고 내년도 말까지 4000억원 상당의 지원을 마칠 예정이다. 이런 것들은 하나의 역사적 사업으로 정부 성과로 내놓을 수 있지 않은가 한다. 물론 앞으로 평가는 남아있지만.
-정부쪽 조치와 역할은 뒤에서 더 논의하자. 서론격인 강제동원의 상처와 후유증을 더 이야기하자.
△최봉태 변호사(이하 최 변호사)=일제 피해자 문제는 과거사가 아니다. 피해자들이 살아 있는 이상 현재의 문제다. 아버님이 일본에서 돌아가셨는데, 어디서 돌아가셨는지, 유골은 어디 있는지 자식들이 찾지 못하고 있다. 또 ‘99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분들도 근로정신대 끌려가가지고 일본 정부로부터 지금 이 시점에서 99엔을 받았기 때문에 싸우고 있다.
강제동원 문제 해결이 쉽진 않다. 식민지 피해를 당했으니까 민족문제의 성격이다. 또 없는 사람들이 끌려갔으니 계급문제다. 전쟁 피해관련 부분이니 평화문제다. 또 근로정신대 같은 경우 여성문제다. 이렇게 중층적인 성격들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해결할 여건이 안되어 있다.
민족문제만 보더라도 남북이 분단되어 있다. 더욱이 계급문제 같은 경우는 우리 사회의 빈익빈 부익부 문제가 심각한 만큼 한계가 있다. 평화문제로 해결하려 하지만 우리는 정전 상황이다. 더군다나 전쟁 수행 세력으로서 책임있는 사람들이 지금도 일본 사회에서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때문에 강제동원은 지금부터 우리가 청산해야할 문제이다. 이 문제 푸는 과정에서 민족 문제도 상당부분 논의될 수 있다. 그다음 민주화 문제, 평화문제 등이 정착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일본이 과거 침략 전쟁을 반성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동아시아 민주주의 위해서라도 이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고, 미래지향적 가치를 지닌다. 동아시아의 가장 시급한 미래 문제다.
△강창일 의원(이하 강 의원)=저는 강제동원이 이산가족 역사의 시작이라고 본다. 6·25 전쟁만 가지고 이산가족 이야기하는데. 이때부터 가족 공동체 깨져 버린 것이다. 조선 총독부의 계획 하에 최소 100만의 가장이 포함됐다. 해방 후 복원되지 않았고, 지금도 사할린 위안부 재일동포 문제 등 고스란히 남아있다.
보상은 일본이 해야 한다. 1965년 한일협정 통해서 과거 배상 보상 청구권 문제가 해결됐다고 해버렸다. 무상 3억 유상 2억 달러 받지 않았냐. 그 돈 때문에 일본 재판에서 늘 지는 거 아니냐. 일본 입장이 다 처리됐다는 거니까. 한국은 정부가 그 돈을 받아서 포항제철 경부고속도로 만들고 또 일부 정치자금 들어갔겠지요. 또 산업화 근대화에 활용됐는데. 그런데 그 돈이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냐. 실제 피해자들에게 돌아가야 하는데 안줬다.
그렇다고 일본 책임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1965년 당시 밝혀지지 않았던 사실들이 있다. 국제법적으로도 보상하게 돼 있다. 일본 정부도 책임져야 하고, 한국 정부도 정부대로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한일 관계의 새로운 100년인데, 대승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