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영성의 길

입력 2010-08-10 18:34


(6) 생수로 부어지기를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리며”(삼하 23:16)

우리 안에 있는 생수는 흘러간다. 물은 많아지면 고여 있을 수 없다. 많아지면 넘치고 넘쳐 흘러간다. 누구도 흐르는 물을 막을 수 없다. 막으면 둑을 터뜨리면서까지 넘쳐난다. 그래서 홍수가 난다. 우리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넘쳐나면 어떻게 될까? 이 질문은 포도가 잘 익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질문과 같다. 알알이 익은 포도는 보기만 해도 싱그럽다. 그러나 포도는 익기 위해서 익는 것이 아니다. 잘 익은 포도가 발로 밟히고 깨어져 향기로운 포도주가 될 때까지 포도의 사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포도는 자기를 깨뜨려 물이 되어야 한다.

다윗 시대에 충성스러운 세 용사가 있었다. 다윗이 전쟁 중에 목말라 심히 고통스러워할 때 그들은 물을 구하기 위해 목숨 걸고 적진에 뛰어들었다. 그래서 구해온 물을 다윗은 차마 마실 수 없었다. 그것은 자신의 온 몸을 바쳐 희생한 피 같은 물이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마시지 않을 물을 위해 목숨까지 건 것을 무모한 일이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이 무모함이다. 다윗 시대에 용사 되기 원하는 사람은 많았으나 다윗을 위해 목숨 바칠 용사는 오직 세 사람뿐이었다.

베다니의 마리아는 평생 모은 옥합을 깨뜨려 주의 발 앞에 부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낭비라고 말했지만 사실 오늘 우리에게 없는 것이 이 낭비다. 오늘날 우리의 머리에는 경제와 절약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아무것이나 다 아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는 아껴야 하지만 우리의 영혼은 그렇지 않다. 영혼을 위해 우리는 아끼지 말고 낭비해야 한다. 아낄 것을 아끼지 않고 버릴 것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 문제가 많다.

C S 루이스가 그의 소설에서 등장인물을 통해 말했다. “이제 와 돌아보면 나는 꼭 해야 할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일도 아닌 것들을 하느라 인생을 거의 다 날리고 말았다.” 다행히 우리는 이 주인공처럼 죽음을 앞두고 있지 않다. 우리의 생명이 남아 있다면 우리는 꼭 해야 할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좋아하는 일도 아닌 일에 목숨 걸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그의 생의 한복판에서 십자가에 죽어 물과 피를 흘렸다. 주기철 목사는 감옥에서, 손양원 목사는 공산당 앞에서 꽃 같은 생명을 버렸다. 그들은 생명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었다(Not taken, but gave it). 그들 속에 있던 예수님의 생명이 너무 크고 아름다워 도저히 혼자 가지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자신을 너무 아끼는 나머지 주님을 위해서는 희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병 없이 오래 살기를 바라지만 우리는 닳아서 죽을 만큼 살아야 한다. 자기 몸을 너무 아끼지 말고 거룩한 소모품이 되게 해야 한다. 어머니는 가정의 소모품이 되고 목회자는 교회의 소모품이 되어야 한다. 또한 신자는 세상의 소모품이 되어야 한다. 물은 고여 있으면 썩는다. 은혜도 직분도 축복도 흐르지 않으면 썩는다. 깨뜨려 흐르지 않는 것 때문에 우리가 타락한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8) 나로 생수 되어 흐르게 하소서.

이윤재 목사<한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