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희 교도관, 30년 근무 경험 엮은 ‘가시울타리 증언’ 책 펴내

입력 2010-08-10 21:23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은폐 시도 영등포교도소 보안계장 제보로 진상 알려졌다”

19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세상에 알려진 건 한 교도관의 결정적인 제보 덕분이었다는 사실이 함께 근무했던 교도관에 의해 23년 만에 처음 공개됐다.

영등포교도소에서 30년째 재직 중인 황용희(53·교위·사진) 교도관이 근무 경험을 엮은 ‘가시울타리의 증언’(멘토프레스)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털어놨다.

황 교도관은 10일 “‘박종철군 고문치사 은폐 조작 사건’이 알려진 데는 당시 영등포교도소 보안계장이었던 안유씨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면서 “퇴직한 안 계장이 진실을 공개하는 데 아직도 부담을 느껴 설득에 힘이 들었다”고 말했다.

안 계장은 당시 교도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보안 사안을 1차로 취급하는 위치에 있었다. 고문 경찰관들과의 면담 기록 등 극비사항은 그의 손을 거쳐 상부로 보고됐다.

87년 1월 20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관련해 경찰관 2명이 교도소에 수감됐다. 상부는 그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고 했지만 이들은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윗선의 계획을 거부했고, 안 계장은 그 과정에서 고문에 가담한 경찰관 모두의 신원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를 시국사건으로 수감 중이던 이부영 전 의원에게 넌지시 알렸고, 이 전 의원은 안 계장으로부터 들은 사실을 편지에 적어 한재동 교도관에게 전했다. 이 편지는 함께 교도관 생활을 했던 전병용씨를 통해 수배 중이던 김정남(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씨에게, 이어 함세웅 신부에게 전달됐다. 이후 고문치사 사건 축소·은폐의 진상은 그해 5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 의해 폭로돼 전두환 정권을 무너뜨린 6월항쟁의 촉매제가 됐다.

지금까지는 이 전 의원이 고문경찰관들의 실체를 교소도 밖으로 전달한 과정만 알려졌을 뿐 사건의 전모를 어떻게 파악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었다.

황 교도관은 주로 1급 정치범이 다녀간 영등포교도소에서 지켜본 인사들에 대한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에 대해서는 “자신이 구속되어 중형에 처해진 것에 몹시 분개하고 있었다. 감방 동료들 앞에서 종종 불만을 토로하곤 했는데 항상 좌익들로부터 나라를 구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내세웠다”고 전했다. 또 “고문 피해자였던 김근태 전 의원은 44일간 머무르며 130여장의 미농지에 빽빽이 글을 쓰고 더러 그림을 그려 고문당한 내용을 상세히 기록했다. 너무 사실적이어서 이해를 돕기에 충분했다”고 밝혔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지하 시인에 대해서는 “인쇄공장에 출역하며 한 달에 300원가량의 돈을 벌었는데, 그 시절을 회상하며 ‘지옥’이란 시를 완성했다”고 회고했다.

황 교도관은 전남 신안군 흑산도 출신으로, 2002년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쓴 에세이 ‘섬마을 소년들’은 이듬해 중학교 3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렸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