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들과 탈레반에 피살 IAM 리더 톰 리틀 부인 리비 여사
입력 2010-08-10 20:53
담담했다. 남편을 잃은 여인 같지 않았다. 슬픔의 빛을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이런 고난이 처음이 아니라는 듯 의연했다. 그리고 당당히 말했다.
“남편은 그의 삶을 아프가니스탄을 위해 드렸습니다. 우리는 그를 아프간에 묻기로 결정했습니다.”
의료진 10명의 목숨을 앗아간 탈레반의 끔찍한 테러에도 국제의료단(IAM)이 진료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미국 CBS뉴스는 9일 저녁(현지시간) 10명의 희생자 중 5명이 아프간에 묻히게 됐다고 보도했다.
이들 5명 중 IAM 팀리더였던 톰 리틀의 부인 리비 리틀 여사는 이날 CBS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가족은 다시 아프간으로 돌아가기로 했다”며 “남편의 뒤를 이어 아프간에서 계속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자 돌을 맞아 잠시 미국 뉴욕 델마에 나와 있던 리비 여사는 남편 톰과 함께 지난 30여년간 아프간에 병원을 세우고 현지인들에게 의술을 가르쳤다. 톰은 서방 의료진과 NGO 관계자들에게 ‘아프간의 전설’로 통했다.
톰의 친구로 10여년을 아프간에서 봉사했던 데이비드 에반스는 이날 CBS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이자 가장 힘든 병자들의 봉사자였다”고 말했다. 의사 동료 톰 헤일도 “그는 당면한 위험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며 “위험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봤다”고 회고했다.
아프간은 버림받은 땅이었다. 톰과 리비는 이곳에서 소외된 땅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었다. 1980년대 구소련의 침공, 90년대 탈레반의 카불 점령, 2000년대 미국과의 전쟁을 겪으며 2800여만 아프간 사람들의 고통을 지켜봤다.
리비 여사는 남편이 사망하기 불과 수일 전 3차 로잔대회의 ‘글로벌 컨버세이션’에 글을 올렸다. 그녀는 “위험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항상 ‘머물 것인가, 떠날 것인가’를 놓고 갈등한다”며 “우리도 그랬는데, 특히 두 번의 어려운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70년대 후반이었다. 마을에 루머가 돌았다. 현지에 살던 10명의 외국인들은 모두 첩자이며 아프간 침공을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주민들은 금방이라도 폭동을 일으킬 듯 날뛰었다. 바로 그 순간 소련군의 침공이 시작됐다. 고막이 터질 정도의 폭발음이 들렸고 이어 탱크와 전투기의 폭격이 이어졌다.
짧은 소강상태 동안 아프간군 호송대가 외국인들을 안전한 장소로 대피시키고 있었다. 리틀 가족 역시 대피를 요청받았지만 그들은 호송대를 따르지 않았다. 대신 이웃들에게 빵과 우유를 전달했다. 전투가 끝났을 때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남은 자’로서 대해주었다.
그해 크리스마스. 세 딸들은 현지인 친구와 그들의 친척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자연스럽게 성탄의 주인공 임마누엘의 하나님 이야기를 들려줬다. 리비 여사는 “그날 밤 우리와 아프간 사람들은 고통스런 순간에도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함께 경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 결정은 90년대 후반 카불에서였다. 몇 달간 폭동과 함께 로켓포 공격이 이어졌다. 당시 모여 있던 외국인은 20명도 안됐는데 대부분 의사였다. 리틀의 집은 모래주머니로 둘러싸여 있어 낮에도 어두웠다. 리비 여사는 이웃 사람들에게 “우리 집에 지하실이 있으며 오는 것을 환영한다”는 것을 알렸다. 마을 사람들은 자기 집 앞에 땅을 파고 방공호 같은 것을 만들고 있었지만 로켓포를 피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다시 로켓포가 날아오기 시작하자 주민들이 하나 둘 리틀의 지하실로 피신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포탄 하나가 떨어질 때마다 코란 구절과 기도를 암송했다. 그리고 공포에 질려 울었다. 리비 여사 역시 무서웠고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그녀는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뿐이었다”고 말했다. 공습이 끝나자 이웃 여성 한 명이 와서 말했다. “지하실에 피신했을 때 당신 입에서 나오는 예수의 이름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때마다 내 몸에 따뜻한 감각이 감도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웃 여인은 나중에 아프간을 떠났는데 들려온 얘기에 따르면 그녀 마음을 따뜻하게 했던 그 존재에 대해 말해줄 기독교인을 찾았다는 것이다. 리비 여사는 ‘광대한 이야기의 작은 판(version)’이란 글의 마지막 구절에서 “그때 우리 집 지하실에 있던 사람들을 축복하시길 바란다”고 기록했다.
졸지에 남편을 잃은 사건 후 첫 주일이었던 8일, 리비 여사가 예배를 드린 뉴욕 델마의 로우던빌커뮤니티교회. 스탠 키 목사는 설교에서 “많은 사람이 복음에 대해 말하지만 복음과 함께 사는 사람은 적다. 그러나 톰과 그의 가족은 분명 복음과 함께 살았다”고 강조했다.
그의 가족 이름(리틀)은 작지만 그들의 삶은 컸다. 그리고 가족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리비 여사는 “아프간은 세상 사람에게 버림 받았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들을 버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