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판 타짜’ 세상을 풍자하다… 日 영화 ‘카이지’ 8월 19일 개봉
입력 2010-08-10 17:35
숨겨놓은 여윳돈은 한 푼도 없는데 빚더미에 앉았다. 누군가 다가와 “시키는 일을 해서 성공하면 몇 억원을 주겠지만 실패하면 목숨을 내놓아라”라고 말한다면 당신의 선택은?
백수 청년 이토 카이지는 악덕 사채업자의 유혹에 넘어가 ‘에스포아르’호에서 벌어지는 가위바위보 게임에 참여한다. 인생 무능력자들이 참여한 이 복불복 게임에서 지는 자는 지하세계에서 기약 없는 노동을 한다는 조건이다. 노동도 할 수 없을 만큼 건강이 악화되면 ‘브레이브 맨 로드’라는, 목숨을 담보로 한 게임이 기다리고 있다. 실패할 것이 불 보듯 뻔한 게임을 하는 동안 이들의 공포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호텔 바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이들을 지켜보는 상류층들이다.
이런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의 인생이다.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카이지’에서 세계는 수십 층 높이 건물 사이에 걸린 손 짚을 곳 없는 외나무다리로 은유된다. 의지할 만한 재산이 없는 탓에 절박한 게임의 현장으로 몰린 사람들은 가차 없이 ‘쓰레기’로 불린다. 한 가지 목표를 달성하면 기다리는 건 행복이 아니라 더 큰 담보를 내놓고 다시 게임을 시작하라는 엄포다. 이쯤되면 무얼 하든 한심하다는 윽박만 받으며 좌절하는 사람이 카이지라는 이름의 순진한 청년인지 영화관 의자에 속 편하게 앉아 있는 나인지 알 수 없다. 카이지는 주인공답게 모든 게임에서 승리해 일확천금의 꿈을 달성하는 듯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영화는 내내 밝은 분위기로 가볍게 전개되지만 어떤 낙관적인 예상도 허용치 않는다. 심각한 이야기를 빠른 전개로 유머러스하고 유쾌하게 풀어간 덕에 직설적인 풍자는 전혀 촌스럽지 않다. 인생 낙오자들에게 ‘쓰레기’라며 호통을 치면서도 그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잊지 않는 미덕도 갖췄다. 앳된 얼굴의 주연배우 후지와라 타츠야도 괜찮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도박 영화라면 한국에도 ‘타짜’가 있다. 전부를 얻거나 잃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인 도박을 그린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차이점도 분명하다. ‘타짜’가 도박꾼들의 세계를 리얼하게 묘사하는 가운데 주인공 고니의 성공담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낸 데 반해 ‘카이지’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토대로 현실을 차갑게 풍자했다. ‘타짜’는 관객이 국외자로서 고니의 모험을 완전히 즐길 수 있지만 ‘카이지’는 그럴 수 없다. 세상 끝에 내몰린 카이지의 위태로움은 우리 모두가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지하지만 유쾌하게, 영화가 던진 질문에 답해 보자. ‘당신이 선 세계는 어디쯤이며 당신은 누구인가’에 대해서. 보기 ①게임장 바깥의 자유세계 시민 ②일확천금을 노리는 백수들이 모인 에스포아르 호 승객. ③외나무다리 위 목숨을 건 낙오자 ④희희낙락 남들의 공포를 즐기는 호텔 바 손님. 답을 찾기 어렵다면 우선 ‘카이지’를 보는 게 순서다.
그러나 장편 만화를 130분짜리 영화로 만든 데 따른 아쉬움도 곳곳에 묻어난다. 카이지가 맞닥뜨리는 여러 번의 승부는 한 편 한 편이 매력적인 에피소드임에도 소재의 참신성과 흥미를 100% 살리지 못한 느낌이다. 일본 영화 특유의 쓸데없는 만화적 오버액션도 군데군데 몰입을 방해한다. 게임 참가자들이 공중에 걸린 다리를 건너는 장면은 중요한 상징성을 띤 영화의 클라이막스인데도 다리 위에서 수다를 떠는 것처럼 느껴진다. 유일하게 등장하는 한국인이 남에게 피해만 주는 경박한 인물로 설정된 것도 심하게 눈에 거슬린다. 15세 관람가. 19일 개봉.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