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복음주의지성의 스캔들/마크 A. 놀 지음, 박세혁 옮김/IVP
입력 2010-08-10 14:56
[미션라이프]“지난 20년간 미국에서는 복음주의자인 동시에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 글은 복음주의 운동을 떠나며 쓰는 편지가 아니라 여전히 복음주의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으로서 지성계를 대표해 호소하는 편지이다.”
현재 미국 노트르담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마크 놀은 북미의 복음주의권에 속한 저명한 학자이다. 그는 책에서 “복음주의는 오늘날 기독교 전체에서 가장 영향력을 끼치는 운동으로 성장했지만 성장의 이면엔 폐해도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복음주의의 상처를 드러내는 자신의 책을 가리켜 ‘상처 입은 연인이 보내는 편지’라고 말한다.
그는 현대 복음주의가 지성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결실을 보았던 지도자들의 정신적인 유산을 물려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 미국 복음주의는 이 위대한 유산을 계승하는데 실패했다고 보았다. 복음주의 지성이라고 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이란 것이다.
저자는 북미 복음주의 운동에 드러난 최대의 실패와 약점을 통렬하게 파헤치고 있다. 마크 놀에 의하면 북미 복음주의가 보여주는 지성적인 피상성과 편협성은 거의 스캔들이라고 불릴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도달해 있다. 복음주의자들이 의지를 움직여 선교와 구제와 사회정의를 추구하도록 이끈 점에서 놀라운 역동성을 보여준 데 비하면, 그 지성적 표피성은 탄식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저자가 스캔들이란 단어를 사용하면서까지 북미 복음주의 운동의 지성적 실패를 지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네 마음(지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명령에 대한 불순종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우리의 감성뿐 아니라 지성을 다해서 사랑하라는 것인데 지성을 무시하면 반쪽짜리 사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20세기 동안 복음주의 운동을 견인해온 수많은 탁월한 신학자들을 고려할 때 그의 비판은 좀 지나친 것처럼 보이며 근거 없는 비난을 쏟아 붓는 것 같기도 하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복음주의 지성의 정의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가 말하는 복음주의 지성이란 복음주의 신학을 포함하면서도 복음주의 신학을 넘어서는 훨씬 더 포괄적이고 총제적인 어떤 것이다. 삶의 전 영역에서 적용해 내는 성향과 능력을 뜻한다.
“복음주의 지성은 모든 영역에 대해 성서적인 사유와 해석을 추구해야 한다.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라는 대전제 하에 모든 영역으로 구분될 수 있다. 복음주의 지성은 모든 영역에 대해 성서적인 사유와 해석을 추구해야 한다.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라는 대전제 하에 모든 영역의 본질과 의미와 가치에 대한 총체적이고 입체적이며 심오한 사고를 추구해야 한다. 그리스도 삶 속에 구체적으로 체계화되는 통합적 적용으로 나가야 한다.” 이것이 그의 정의이다.
그러나 이 지성의 작업은 신학자만의 일이 아니라 “네 지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은 모든 평범한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이 일상에서 평생토록 추구해야 할 삶의 방식이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지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복음주의는 천박한 감정주의에 함몰되어 점점 몰락해 갈 수밖에 없다는 것.
21세기 초 대한민국 상황 속에서 미국학자가 북미 복음주의 지성운동의 문제점을 파헤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한국의 복음주의 운동이 북미, 특히 미국 복음주의 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에는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 영향을 끼쳤던 미국의 복음주의는 지금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런 만큼 미국의 복음주의 운동이 갖는 약점을 고찰한 이 책은 곧 21세기 한국교회의 약점을 고찰하는 책이기도 하다. 한국 교회로 하여금 메마른 지성주의도 반지성주의도 아닌 균형 잡힌 영성을 추구하게 만든다. 책은 미국에 초점을 둔 책이지만 책에서 다루는 많은 내용은 전 세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 인간의 지성과 이성을 과신하는 지성주의는 멀리해야 하지만 지성과 이성을 적대시하는 반지성주의도 버려야 한다. 아울러 책은 일상에서 영성과 지성을 온전하고 균형 있게 회복해야 할 까닭이 무엇인지를, 한국 교회 신앙 형성에 영향이 큰 미국 교회를 통해 보여준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