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홍사종] 축구 열풍 거꾸로 읽기
입력 2010-08-09 17:47
“축구 잘하면 한국 위상이 높아지고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길이 빨라질까”
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 경기 때 대한민국은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사상 처음으로 세계 4강 고지에 올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온 국민이 흥분해 땅을 구르는 소리가 지구 반대편까지 들렸을 성싶을 정도로 요란했다. 되는 일 없는 세상에서 축구가 일궈낸 신화는 대한민국을 하나로 묶는 동력이 됐다. 이 축구 열기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 때 재연됐다. 우리의 축구선수들은 국민영웅으로 떠올랐고 해외 출정경기 사상 첫 16강에 드는 동안 우리 국민은 최대의 희열과 행복을 만끽했다. 행복을 만끽했다는 표현은 모 방송사 뉴스에 나온 멘트다.
곧이어 축구전사들에게 병역면제의 특혜를 주자는 주장까지 나왔고 축구인재 육성을 위한 각종 방안까지 축구의 인기에 못지않은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너도 나도 축구공화국을 건설하면 당장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것처럼.
과연 축구를 잘하면 세계 속의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길이 그만큼 빨라질까. 물론 축구 열풍이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행복물질을 우리 몸속에 주입해주는 효과가 크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축구 열풍 이면에는 다른 진실이 숨어져 있음도 알아야 한다.
남아공월드컵이 한창일 때 미국의 CNN은 대한민국 축구팀 주장 박지성을 인터뷰했다. 영어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앵커는 ‘자신들이 볼 때는 맨유의 박지성 선수가 제3국에서 온 선수 중 하나일 뿐이지만, 한국에서는 영웅’이라고 소개했다. 이 말 속에는 한국의 지나친 축구스타 열풍을 비하하는 의미도 내포돼 있다.
실제로 거대한 스포츠 상업자본인 맨유는 박지성 선수 등을 데려다가 영국보다 한국에서 더욱 유명한 선수로 만들었다. 이 보이지 않는 손은 한국 선수 마케팅을 통해 많은 돈을 한국에서 거둬들였다. 2006년 박지성 선수를 연봉 52억원이라는 헐값(?)에 사서 4일간의 한국 방문경기를 통해 200억원이 넘는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맨유는 현재 역시 아시아마켓을 타깃으로 활발한 마케팅을 진행 중이다. 축구와는 다른 경우지만 이름 그대로 미국 프로농구협회인 NBA도 중국 농구선수 야오밍, 왕즈즈 등을 미국 농구계에 데뷔시킨 뒤 이들이 ‘중국의 자존심’이라는 점을 이용, 몸값을 키워 중국시장을 공략했다. 야오밍의 경우 몸값의 40∼50배 투자승수 효과를 만들어냈다.
마치 산업혁명 시절 영국이 면직물의 원료인 목화를 인도에서 싼 값으로 구입, 완제품을 만들어 비싸게 되파는 수법처럼 스포츠 상업자본에 의해 축구 등 스포츠 열풍이 복합적으로 조장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남아공월드컵 경기의 진정한 승자는 스페인이라기보다 국제축구연맹(FIFA)이라는 쪽이 맞다. 스포츠제국 FIFA가 앉아서 거둬들인 돈은 4조5000억원에 이른다.
축구를 잘한다고 국민이 행복해졌다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엔도르핀 과잉에서 오는 일시적인 흥분현상이었다는 쪽이 맞지 않을까. 재미있는 통계는 축구 잘하는 나라치고 행복지수가 높은 선진국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덴마크 이외에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는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는 월드컵 본선에 나오지 못했다. 그동안 월드컵 상위권 국가들은 행복지수 하위인 남미 등의 국가인 점을 감안해보면 이 점은 분명해진다.
국제 축구경기는 올림픽처럼 이성화되고 합리화된 사회에서 벌어지는 과거 전쟁의 압축편이다. 국가 간 갈등의 에너지가 쌓이면 지표 속의 마그마가 분출하듯 전쟁이라는 비정상적인 출구를 찾게 마련이다. 축구는 이 갈등을 통합하고 결속하는 힘도 있지만,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데도 유용하다. 정치적 혼란과 빈부 격차로 사회 갈등을 치유하지 못하는 남미 등 일부 국가의 국민들이 더욱 축구에 목맨다는 사실은 이를 입증한다.
‘남아공월드컵 8강에 대한민국이 올랐더라면 집권자의 입지가 더 좋아졌을 것’이라는 신문 보도를 보고 씁쓸한 생각이 드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축구도 문화 사회 경제적 의미를 알고 즐기면 더 크고 넓은 세상과 만날 수 있다.
홍사종 미래상상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