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변재운] 물가와 공공요금
입력 2010-08-09 17:46
“물가는 몽둥이로 때려잡는 것이야.”
전직 장관 A씨가 오래 전 재정경제부 물가담당 국장으로 있을 때 기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한 말이다. A씨뿐만 아니었다. 당시 관리들은 물가담당 국장으로 발령을 받으면 앞뒤 안 가리고 목표 달성에 매달렸다. 1순위는 공공요금을 꽁꽁 묶는 것이다. 아무리 인상이 필요하고 공기업에서 아우성쳐도 자신이 물가관리를 맡고 있는 기간에는 어림도 없다. 이른바 님트(Not in my term) 현상이다. 그렇게 해서 물가관리에 성공하면 연말에 대통령 표창이 주어지고 요직으로 영전을 한다.
예나 지금이나 공공요금은 물가관리의 주요 표적이다.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도 하지만 전기, 수도, 교통비처럼 일상생활에서 다른 대체수단이 없는 필수불가결한 품목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국민들이 전기료와 수도료를 전기세, 수도세라고 세금처럼 부를까. 한번은 국세청이 보도자료를 내고 “전기료와 수도료는 세금이 아니며, 국세청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라고 홍보까지 했다. 실제로 예전에는 한전이 전기료 많이 인상하면 국세청으로 항의전화가 오기도 했단다.
7·28 재·보궐 선거가 끝나자마자 전기·수도료 등 공공요금이 무더기로 올라 국민의 원성이 높다. 하필 이명박 대통령이 ‘친서민’을 강조했던 터라 정부여당의 해명이 영 궁해 보인다. 더구나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하반기 물가관리에 비상이 걸렸음을 감안하면 타이밍이 좋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야당은 이 대통령의 ‘친서민’이 ‘무늬만 친서민’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기세를 높이고 있다.
공공요금이 2, 3차 물가인상을 가져오는 등 파급력이 크다고 하지만 가격 통제 정책으로는 물가관리에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공기업도 기업이므로 생산품을 적정 가격에 팔아야 수지타산을 맞춰 생존이 가능하고, 원가가 오르면 인상 요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물론 경쟁이 필요 없는 독과점적 구조인 만큼 비용 절감을 통해 인상 요인을 최대한 자체 흡수해야 하지만 가격 통제로 적자가 누적되면 그로 인한 폐해는 결국 국민이 떠안게 되는 법이다.
물가관리는 수요·공급과 금리, 환율 등 거시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특히 수출 대기업에 천문학적 수익을 안겨준 고환율정책은 서민과 물가를 위해서라도 방향을 전환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경제정책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어차피 한 쪽은 피해를 보기 마련이다.
변재운 논설위원 jwb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