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손수호] 흑기사 차윤정의 4대강 분투기

입력 2010-08-09 17:44


우리 사회의 갈등은 곧장 이념전쟁으로 치닫는다. 이념싸움은 종종 진영의 논리를 전파하는 선동을 부른다. 사실은 설 자리가 없게 된다. 선동과 사실이 섞이고, 주장과 과학이 얽히면 여론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이때 사람들은 지식인을 찾는다.

천암함 침몰을 둘러싼 공방은 카이스트 송태호 교수에 의해 정리되는 형국이다. 재미 한국인 과학자가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국제적인 이슈로 부상되던 1번 글씨 논란이 “어뢰가 폭발해도 글씨는 타지 않는다”는 논문 한 편으로 진정되었다. 과학의 힘을 실감한 순간이다. 송 교수는 “학자의 양심을 걸었을 뿐 누구로부터 어떤 부탁도, 지원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4대강에 떠있던 부유물질도 정리되는 느낌이다. 찬성이거나 아니거나 강을 살리는 데는 한마음이었으니, 오해와 불신이 조금씩 가시는 모양새다. 재·보궐 선거에 따른 정치적 해석도 있지만, 그동안 여러 분야에서 진행된 전문가 그룹의 깊이 있는 토론이 일반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생태학자 言行 큰 공감 얻어

이 토론의 한복판에 선 사람이 차윤정 박사다. 환경단체 ‘생명의 숲’ 운영위원을 지낸 그는 숲에 들어설 때 정령들이 놀랄까봐 헛기침을 한다는 생태학자다. 해박한 지식과 감성적인 문체를 버무린 베스트셀러 ‘신갈나무 투쟁기’ 등 말랑말랑한 생태학 저서가 10여권에 이른다. ‘식물은 왜 바흐를 좋아할까’라는 책에서 “정직이 최선이다”라는 좌우명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가 지난 5월, 4대강 대열에 합류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주어진 명함은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 환경부본부장 겸 홍보실장’. 한국의 레이첼 카슨(미국의 저명한 환경운동가)으로 불리던 사람이 4대강 사업의 흑기사로 나선 것이다. 비난도 많았다. 연봉 7000만원짜리 1급 공무원 자리에 영혼을 판 학자로 매도됐다. “자연은 투자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이다”라고 쓴 글은 십자포화를 받았다.

차 박사는 정면 돌파했다. 책에서는 생태계의 원칙을 다뤘지 가치판단을 하지 않았다, 지금 있는 그대로가 좋다는 식의 자연보전에는 반대한다, 나무를 솎아주는 간벌(間伐)은 생태적이지 않은가, 과수원과 목장 만드는 것을 자연파괴로 볼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강이 지금 상태로 간다고 행복할까? 아니다. 오히려 강물이 줄고 수질이 악화되면 멸종위기에 빠진다.”

이와 같은 논리로 의제를 장악해 나갔다. “강은 스스로 흘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그것은 강 스스로 죽으라는 잔혹한 이야기다. 생태적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모든 강을 직선화할 거냐”는 지적에 “보(洑)가 아닌 구간은 대부분 하천의 자연스런 선형이 유지된다”, 운하의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이에게 “낙동강과 한강은 결코 연결되지 않는다”고 안심시킨다. “수량보다 수질”을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갈수기 때 물고기의 심정, 농부의 심정을 아는가”라며 되묻는다.

차 박사는 흑기사답게 씩씩하고 부지런하다. 지방의 소규모 종교인 모임이 불러도 얼른 찾아가고, 지역 언론이 주최하는 토론회에 나가 큰 목소리로 발언한다. 카이스트 학생들이 마련한 모임에서 반대론자인 공주대 정민걸 교수와 3시간에 걸쳐 토론했다. ‘내 양심을 몽땅 걸고 4대강 사업에 반대한다’는 서울대 이준구 교수의 글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도 용기다.

전문가 집단이 江 미래 결정

그는 싸움에서 유리하다. 알토란같은 정부 자료를 다 쥐고 있다. 그래서 토론의 승전보를 즐기기보다 경청하고 설득당할 준비를 해야 한다. 학자출신답게 논리에서 밀리면 승복해야 한다. 그렇게 작은 의제들을 정리하고 큰 의제만 남긴 뒤 국민의 판단을 구하는 것이 옳다. 그게 전문가의 역할이다.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이로운 4대강’은 차 박사와 같은 지식인의 역할에 따라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