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개각] 김태호 스토리…소장수 아들→최연소 도지사→차기 대권주자?

입력 2010-08-08 21:51


똥지게를 지며 자란 가난한 소장수의 아들. 김태호(48) 총리 내정자는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와는 달리 항상 자신을 ‘촌놈’이라고 소개했다. 도의원과 거창군수, 두 차례 경남도지사를 거치면서도 변함없이 자신을 낮추는 자세는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김 내정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등을 거켜 정식 총리에 취임하게 되면 역대 총리 중 다섯번째 최연소자가 된다. 40대 총리는 초대 이범석(1948년·47세), 4대 백두진(1953년·44세), 9대 정일권(1964년·46세), 11대 김종필(1971년·45세)에 이어 39년 만이다.

1962년 거창군 가조면 일부리 부산마을에서 태어난 김 내정자는 동네에서 소문난 개구쟁이였다. 또래 친구들과 소먹이 나갈 때면 대장 노릇을 도맡을 정도로 리더십과 친화력이 뛰어났다.

김 내정자가 처음부터 입신양명을 노린 것은 아니다. 그는 아버지의 농사일을 잘 돕는 착한 아들이었으며 중학교를 졸업한 뒤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농약병에 적힌 영어는 읽을 줄 알아야 농사를 제대로 지을 것 아니냐”는 설득에 거창농고에 진학했다. 고생하는 부모님을 호강시켜 드리기 위해 대학 진학을 결심한 뒤 하루 4시간씩 자며 공부에 매달렸다.

서울대 농대 농업교육과에 입학한 그는 농촌계몽활동을 하는 ‘4H연구회’ 활동에 들어가면서 농업 문제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그가 정치와 인연을 맺은 것은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김동영(91년 작고) 의원의 서울 집에 입주과외를 하면서부터다. 하숙비를 댈 형편이 못됐던 그의 부친이 “과외선생 해주고 밥이나 얻어먹어라”며 친구인 김 의원에게 아들을 맡겼다. 80년대 초반 김 의원 집은 민주산악회의 중심점으로 김 내정자는 자연스럽게 많은 정치인을 만나게 됐다.

대학 졸업 후 군복무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교수의 꿈을 키우던 그는 92년 3월 14대 총선을 앞두고 김 의원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고향 선배 이강두 당시 민주자유당 후보 캠프에 합류하면서 정치판에 본격 뛰어들었다. 김 내정자는 이 후보가 금품 사건에 휘말려 구속되자 “무소속으로 옥중선거를 치르자”고 우겨 결국 승리를 이끌어냈다.

김 내정자는 95년 민자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사회정책실장을 맡아 정책을 구상하기도 했다. 9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패하자 고향 거창으로 내려가 98년 지방선거에 출마, 도의원에 당선됐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현직 군수를 누르고 40세에 당선됐다.

김 내정자는 군수 2년 만에 당시 도지사였던 김혁규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하자 군수직을 던지고 도지사 선거에 도전, 압도적 표차로 도지사에 올랐다.

김 내정자의 도정 7년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해안 프로젝트 추진과 5대 분야 도정발전 로드맵 수립, 경남프로축구단 창단, 람사르 총회 유치 성공, 조선·로봇산업 등 신성장동력산업 인프라 구축 등은 도민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특히 김 내정자는 도지사 당선 직후 자신의 집무실에 한반도 지도를 거꾸로 달아놓고 “생각을 바꾸자”고 강조했다.

2006년 5월 재선에 성공하면서 ‘불혹’을 갓 넘긴 42세의 김 내정자에게는 최연소 광역단체장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박노해 시인의 시에서 따온 ‘사람이 희망이다’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그는 사람을 무척이나 귀하게 여긴다. 그래서 그의 곁에는 행동하는 정치철학을 전하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내정자의 고향인 거창군 가조면 일부리 부산마을 김채우(52) 이장은 “김 내정자를 위해 잔치를 준비하고 있다”며 “국민들의 뜻을 잘 받들어 큰 정치를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거창=윤봉학.이영재 기자 bh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