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9 항법사 반 커크 “더 큰 희생 막은 원폭투하… 후회는 없었다”
입력 2010-08-08 18:51
폭탄 투하 후 43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눈이 멀 정도로 밝은 오렌지색 섬광이 솟아올랐다. 곧이어 비행기가 요동쳤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15분, 일본 히로시마의 540m 상공에서 벌어진 일이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투하한 미국 전폭기 B-29를 몰았던 항법사 시어도어 반 커크는 정확히 65년 만인 지난 6일 영국 BBC 방송에 출연해 당시를 회상했다.
“창밖으로 떠오르는 태양이 보였습니다. 참 아름다운 태평양의 아침이었어요.”
조종사였던 폴 티베츠의 어머니 이름을 따 ‘에놀라 게이’라는 이름을 가진 B-29에는 커크의 친구 2명과 9명의 미군 병사들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임무가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중요한 일”이라고만 들었다. 히로시마에 가까워오자 본부에서 통신이 왔다. “당신들의 임무는 도시 전체를 파괴하는 일”이라고 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끝내 통보받지 못했다. 커크는 “그때까지도 무슨 일인지 몰랐다면 바보이고, 아는 것을 말했다면 더 바보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원자폭탄을 떨어트린 뒤 전속력으로 진로를 오른쪽으로 꺾어 비행했다. 핵과학자들은 전날 “핵폭발 때 9마일(약 14.5㎞) 정도 떨어져 있으면 안전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들도 핵폭발의 위력이 얼마나 거대할지 잘 알지 못했던 것이다.
폭발의 위력은 엄청났고, 10만명이 숨졌다. 히로시마는 초토화됐다. 이 때문에 폭탄 투하 후 부조종사 밥 루이스가 탄식하며 “오 하나님, 저희가 무슨 짓을 한 것입니까”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커크는 이에 대해 와전된 것이라고 시사했다. 그는 “밥이 한 말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겠다”며 “단지 설명적인 성격이 강했다고만 말해두겠다”고 했다.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커크는 ‘에놀라 게이’에 타고 있던 11명 중 누구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밝혔다. 오히려 일본 본토에 대한 연합군의 침공 필요성을 없애 더 많은 희생을 막았다고 자평했다.
“그들(일본)은 전쟁을 그만두려고 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그 일을 해야 했습니다. 전쟁이 계속 됐다면 일본 국민들에게도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모릅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