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피플] 천안함 인양작업 총괄 해양수중공사 전중선 대표
입력 2010-08-08 18:54
지난 4월 24일 오후, 천안함 인양작업을 마친 뒤 배를 타고 백령도 용기포선착장으로 향하던 전중선(54) 해양수중공사 대표는 한동안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20여일 동안 긴박하게 진행됐던 선체인양작업의 세세한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함미와 함수를 무사히 인양한 건 다행이지만, 6명의 실종자를 바다에 두고 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 가슴 아픕니다.” 전 대표는 당시 백령도 선착장에서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꺼냈던 말을 3개월여가 지난 지금도 똑같이 되뇌었다.
지난 7일 오후 인천 항동 연안부두 앞 상가 1층 사무실. 입구에 들어서자 6개 들이 생수 2박스와 라면 2박스, 특수 제작된 용접봉 2개, 잠수복 등 짐 보따리가 쌓여 있었다. 전 대표는 “충남 대천 앞바다에 바지선이 가라앉아서 인양 작업을 준비하는 중”이라며 “열흘 치 음식과 각종 인양 장비들”이라고 설명했다. 천안함을 인양하고 나서 갑자기 일감이 많아진 걸까.
“천만의 말씀이에요. 오히려 일거리가 더 줄었습니다. 천안함 인양한 업체라고 소개받은 사람들이 막상 우리 회사를 보고 나서는 생각보다 작은 업체라고 실망한 것 같더라고요. 하하하.” 전 대표가 운영하는 해양수중공사의 직원은 모두 8명. 전국에 선박인양업체가 20여개 있는데, 그 중에서도 중간 규모에 불과하다. 선박인양 업무가 항상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방파제 수중공사 같은 해양 토목공사나 외항선 선체검사 등도 병행하고 있다.
이런 중소업체가 천안함 인양을 맡게 된 건 순전히 전 대표의 ‘노하우’ 덕분이다. 그는 해병대를 막 제대한 뒤인 1979년부터 형이 운영하던 선박인양업체에 취업해 지금까지 한우물을 파고 있다.
그동안 3000t급 선박 5∼6척을 비롯해 인양 선박만 60여척에 달한다. 2007년 말 서해 태안반도에서 원유 유출사고가 발생한 허베이 스피리트호의 인양 작업에도 참여했다. 천안함 인양 업무를 맡게 된 건 지난해 11월 서해에 침몰된 어선 백경호를 인양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선박을 호위했던 해군 측이 빈틈없는 인양작업을 보고 추천한 것이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인양작업을 총괄하는 입장에서 심적 부담이 너무 컸습니다. 온 국민이 충격에 빠진 상태에서 하루라도 빨리 선박을 인양해야 하는데 날씨가 안 도와주더라고요. 함미에 이어 함수를 인양하는 데 총 20일 정도 걸렸지만 실제 작업한 날은 열흘 정도에 불과해요.”
선박 인양작업은 선박의 침몰상태와 조류, 기후 등 3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성공 확률이 높다. 선박 상태에 따라서는 해상크레인 및 체인 종류 등을 선별하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 모든 준비가 갖춰지더라도 변화무쌍한 해상기후 앞에서는 ‘허사’가 되기 일쑤다. “보통 선박인양 성공률은 70∼80% 정도입니다. 10건 중 2∼3건은 실패하는데 대부분 날씨와 조류 때문이에요.” 특히 서해상에서의 작업은 동·남해보다 몇 배나 더 어렵다. 염도와 탁도가 심해 수심 20m 정도만 들어가도 동·남해 바다의 50m 깊이까지 들어간 것 같은 압력을 느낀다고 한다. 수중 작업도 일일이 손으로 더듬어가면서 해야 한다.
30년 넘게 이어져 온 선박 인양업은 전 대표의 성격까지 바꿔놓았다. “성격이 급해질 수밖에 없어요. 상선이라도 침몰하면 유족들이나 선박회사 직원들의 마음이 오죽하겠습니까. 한시라도 빨리 작업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지요.”
이 때문에 가족들은 “이제 배 끌어올리는 일을 그만두라”고 만류한다. 하지만 전 대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육상에서 일을 하면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으로부터 평가를 받는데, 선박 인양은 달라요. 내 판단과 선택, 결정에 따라 물속에 직접 들어가 작업하는 데서 오는 사명감과 책임감, 성취감이 얼마나 짜릿한데요. 그건 저밖에 모르거든요.”
인천=글, 사진 박재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