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치 합창경연 그랑프리 ‘필그림미션콰이어’… 오로지 성가만 합창 외고집 30년 꽃폈네
입력 2010-08-08 17:44
1980년 지방의 한 도시에서 지휘자를 포함, 4명의 단원으로 출발했을 때만 해도 초라했다. 30년을 이어오며 합창단으로 규모가 커졌지만 단원들이 탈퇴하는 등 시련도 많았다. 그럼에도 이들은 첫 마음을 잊지 않았다. “최고의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자.” 그리고 마침내 열매를 맺었다. 지난달 이탈리아 고리치아에서 열린 ‘제49회 세기치 국제합창경연대회’에서 최고상인 그랑프리를 수상한 것. 대구에서 창단한 필그림미션콰이어(지휘 이재준) 얘기다.
필그림은 2002년 부산, 2004년 독일 브레멘에서 열린 세계 합창올림픽에도 출전해 무반주 종교음악 부문에서 2회 연속 챔피언을 차지했다. 매년 정기연주회 외에도 20회 이상의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다.
세기치 합창경연대회는 유럽에서도 가장 권위 있는 국제대회로 알려져 있다. DVD 심사로 예선을 거쳐 13개국의 19개 합창단이 3일간 부문별로 대회를 치렀다. 마지막 날 부문별 1위 팀들이 경연을 벌였고, 필그림은 당당히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얼핏 보면 필그림은 여느 합창단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는 게 있다.
“연주회 등에 초청되면 주최 측에서 대중적인 곡을 불러 달라고 요청합니다. 외국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서도 한국의 민속음악을 들려 달라고 부탁합니다. 재정적인 부분을 생각하면 그런 노래들 몇 곡 더 부르고 출연료를 받을 수도 있지만, 정중히 거절합니다. 필그림은 성가만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93년부터 필그림과 함께해 온 수석지휘자 김성진(37)씨 말이다.
오로지 성가만을 부르는 필그림은 자비량 선교단체다. 대구시 대명동에 필그림미션센터를 세우고 국내외 순회연주, 병원 및 복지시설 순회찬양에 나서고, 미전도종족 음악선교사를 지원한다. 또 필그림미션뮤직센터를 통해 실력 있는 크리스천 뮤지션 양성에도 앞장선다. 청소년을 위한 음악세미나를 열고, 음악감상실, 쉼터도 운영 중이다. 단원들은 일을 병행하거나 후원으로 이 모든 사역을 뒷받침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필그림을 그만두는 단원들도 여럿 있었다. 사실 김씨도 세기치 경연대회를 앞두고 사역을 접어야 할 위기에 처했다. 시립합창단원이었던 그가 재임용을 받지 못한 것. 가족을 생각하면 일을 먼저 찾아야 했다. 그는 “주일예배를 드리면서 당장 내 앞에 당면한 문제 때문에 겁먹고 도망치는 게 해결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렇게 마음을 잡고 보니 어느새 하나님께서 준비한 여러 손길들을 통해 사역을 이어주셨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단원 중엔 사역을 위해 운영하는 가게 문을 10일 넘게 닫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적지 않은 희생이 따랐다. 그럼에도 이들은 무엇 때문에 필그림에 집중하는 걸까.
“세상적인 영예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높여드리는 것이 삶의 기쁨이라는 걸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